[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393>월요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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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시장 ―여태천(1971∼ )

어제와 같이 오늘의 날씨를 생각하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다
향료를 싣고 인공의 도시를 찾아다니는
푸른 눈의 낙타
길게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걸어오고 있다
도시의 사막에서 발이라도 빠질까
조심조심 걷는다
되새김질을 하며 얇은 모래의 언덕을 오르는
낙타의 가쁜 숨소리 덜 덜 덜
오래 된 아라비아의 음악이 들린다

전국적으로 황사가,
기상 캐스터의 또박또박한 음성이
모래의 귀를 밟고 지나갔다
단단하게 굳은 모래의 집들 사이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웅성거린다
늙은 낙타의 등에서는 재빨리
지중해의 과일과 고랭지 채소가 내려지고
천막 안에는 남태평양의 비린내를 풍기며 생선 이 쌓인다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장이 선다
오늘은 비를,
며칠째 물과 먹이를 찾고 있는 원시인의 표정으로
창밖을 본다
영 글렀다
황사는 벌써 아파트 단지를 점령한 모양이다
혹시나 비라도 오면, 그래서
이 오랜 사막의 구릉을 내려갈 수 있다면
햇빛이 황사와 부딪혀 나는 소리가
들리다 말다 그랬다
움직일 때마다 바싹 마른 몸이
먼지를 피우며 스르르 흘러내렸다


구두 굽 딛는 소리 쪽을 바라보니 ‘향료를 싣고 인공의 도시를 찾아다니는/ 푸른 눈의 낙타/ 길게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걸어오고 있’단다. 눈두덩엔 푸른색 아이섀도, 속눈썹엔 마스카라, 향수 냄새를 훅 끼치며 지나가는 화장 짙은 여인 낙타다. 알 밴 종아리에 발목 가는 여인이 하이힐을 신고 있으면 무릎 아래 뒤태가 낙타나 말 같은 발굽동물의 다리를 연상시킨다. 그에 촉발됐을까. 주위 풍경이 순식간 사막으로 바뀐다. 매연을 뿜으며 간신히 언덕을 올라가는 차도 낙타고, 과일과 채소를 실은 낡은 트럭도 낙타다. ‘어제와 같이 오늘의 날씨’ ‘전국적으로 황사’ ‘며칠째 물과 먹이를 찾고 있는 원시인의 표정’, 날씨마저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한 나날이란다. 불모감에 무기력하게 가라앉아 있던 화자는 차라리 사막의 환상, 사막의 몽상을 집요하게 펼친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사막 도시에 시장이 열리고 낙타 떼 같은 사람들 웅성거린다. ‘풀 한 포기 없는 곳’에서,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월요일을 환대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유독 울적한 화자의 월요일이다. 어지간한 비로는 적시지 못할 불모감, 지독히 건조한 우울증을 앓는 시대와 개인이 황사 자욱한 풍경으로 그려졌다.

황인숙 시인
#월요시장#여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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