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몽골족 출신 작가들 “늑대를 신성시? 유목민에겐 천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일 03시 00분


출간 11년만에 도마 오른 中소설 ‘늑대 토템’

한족 소설가 뤼자민(呂嘉民)이 2004년 출간한 자전적 소설 ‘늑대 토템’(원제 랑투텅·狼圖騰)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상영돼 큰 인기를 끌자, 몽골족 출신 작가들이 소설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소설에선 늑대가 몽골족의 토템(신성시하는 상징물)으로 묘사됐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39개 언어로 번역돼 지난 10년 동안 한국 등 110여 개국에서 출판됐다.

책은 문화대혁명(1966∼1976년) 초 네이멍구의 한 시골에 하방운동(중국 공산당 당원 및 국가공무원을 농촌에 보내 일하도록 한 운동)을 간 한족 청년이 환경 파괴로 생존을 위협받는 늑대 무리와 몽골족 유목민의 유대 관계를 마주하고 성찰하는 내용이다. 늑대의 용맹과 조직력, 불굴의 투쟁 정신, 인간과의 교감 등이 광활한 초원을 토대로 펼쳐진다.

프랑스의 장자크 아노 감독이 7년에 걸쳐 이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을 했고 올해 2월 춘제(春節·설날)에 개봉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태어난 지 12일밖에 지나지 않은 새끼 늑대 17마리를 어미의 품에서 빼내 훈련시켜서 영화의 사실감을 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노 감독은 오스트리아의 유명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가 쓴 책 ‘티베트에서의 7년’을 1997년 동명의 영화로 만든 인물이다. 하러가 티베트에서 지내면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교류를 나눈 경험을 담은 내용이다. 그는 이 영화 때문에 한동안 중국 입국 금지를 당했다.

몽골족 출신 소설가 궈쉐보(郭雪波)는 최근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소설에서 몽골족이 늑대 토템을 갖고 있다고 묘사한 것은 진실 왜곡”이라면서 “작가 장룽(姜戎·소설가의 필명)이 늑대의 반인류 파시스트 정신을 몽골족에게 뒤집어씌웠다”고 반박했다. 몽골족 역사에 천착해 온 궈 씨는 “몽골족은 처음에는 샤먼교를 믿다가 이후에 불교를 신봉했으나 늑대를 토템 대상으로 한 적은 없다. 오히려 늑대는 천적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궈 씨는 “소설에 늑대가 조직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늑대는 단체정신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탐욕스럽고 잔인하다”면서 “작가는 초원에 고작 3년 머무른 한족 청년”이라며 일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폄하했다.

역시 몽골족인 네이멍구사범대 몽골어문학과 만취안(滿全) 주임도 “역사 기록에 늑대를 몽골의 토템으로 기재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몽골인의 정서로도 늑대는 조상의 토템이 될 수 없으며 받아들일 수도 없다”며 “몽골 유목 민족에게 늑대는 적이며, 유목민과 함께 하는 양, 소, 말에게 늑대는 천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영화평론가는 “늑대가 몽골족의 토템이었는지 아닌지를 떠나 ‘랑투텅’ 소설과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 정신 때문”이라며 “점차 생존환경이 어려워지는 현대에 생명과 존엄을 위해 싸우는 늑대의 도도한 정신을 갈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늑대 토템#랑투텅#몽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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