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아내에게 두 번 절한 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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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의 ‘옛글에 비추다’를 연재합니다. 고전 속에서 지금 나아갈 길을 톺아봅니다. 》

상주(尙州)에 임(林)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미천하였지만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섬겼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제사를 지내려고 기름을 짜 사발에 담아서 방에 두었는데 80세가 넘은 시어머니가 이것을 요강인 줄 착각하고는 채소밭에 들고 들어가, 심어 놓은 파를 따라 부으려고 하였다. 어린 손녀가 그것을 보고는 “할머니 안 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어머니가 달려와서 손녀의 입을 막고, “노인을 놀라게 하지 말거라” 하고는 천천히 시어머니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머니, 오줌은 꼭 물과 섞어서 부어야지요. 그리고 노인네가 꼭 이런 수고를 직접 하셔야겠어요? 제가 대신 할 테니 주세요.” 그러고는 기름을 받아 몰래 갖다놓고는 요강을 들고 와서 물을 섞어 채소밭에 부었는데 시어머니는 이를 조금도 알지 못하였다. 저녁 무렵 남편이 돌아오자 어린 딸이 아버지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하였다.

위의 글은 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선생의 문집에 수록된 ‘임효자전(林孝子傳)’입니다. 번암 선생이 효자 임씨의 이야기를 듣고는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여 쓴 글일 텐데, 읽다 보면 임씨보다는 그의 아내가 더 훌륭해 보입니다. 물론 아내가 임씨의 효성에 감화되어 그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가지고 있는 자신의 품성이 훌륭했기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모를 보고 자란 그 딸은 또 얼마나 착하고 효성스러운 처자가 되었을까요?

요즈음 인성 교육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학 입시에서도 인성을 평가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교재도 만들어야 할 테니 ‘삼강행실도’ 같은 고전 자료들을 교육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듭니다. 인성이란 게 책을 읽히고 점수를 매긴다고 길러질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몸으로 보여주고 따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텐데….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딸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다 들은 아버지.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임효자전’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효자는 섬돌에 내려가서 그 처를 향해 두 번 절하였다(孝子便下계, 向其妻再拜).”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번암 채제공#임#효자#효성#인성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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