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정원의 속삭임]베란다 정원의 효자, 알뿌리식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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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뿌리식물은 꽃이 지고 난 후에도 잎으로 지속적인 광합성 작용을 해야 다음 해 꽃을 피운다. 베란다에 상자를 마련해 함께 모아 심는 게 좋다. 오경아 씨 제공
알뿌리식물은 꽃이 지고 난 후에도 잎으로 지속적인 광합성 작용을 해야 다음 해 꽃을 피운다. 베란다에 상자를 마련해 함께 모아 심는 게 좋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모든 식물은 물, 햇빛, 영양분이라는 3대 조건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 조건을 아주 풍족하게 누리며 성장하는 식물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은 뭔가의 부족으로 힘겨워하고 이로 인해 병에 걸리거나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식물이 생존을 하늘에 맡긴 채 수동적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동물처럼 자신의 몸을 움직여 적을 피하거나 혹은 먹을거리를 직접 찾아다닐 수는 없지만 식물은 ‘적응과 진화’라는 방식으로 오히려 동물보다 더 강인하게 이 지구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놀라운 식물의 적응과 진화의 최근 모습이 바로 ‘알뿌리식물들’의 등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알뿌리식물로는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크로커스, 백합 등이 있다. 물론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재료인 양파, 파, 마늘도 같은 유형의 식물이다. 이 식물들은 영양분과 물이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아예 뿌리를 알로 변형시켜 한 해 동안 잎으로 열심히 광합성을 한 뒤 영양분을 모두 뿌리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다음 해 봄이 되었을 때 물을 주지 않아도, 영양분이 없어도 스스로 잎을 틔우고 자기 덩치에 비해 엄청나게 큰 꽃을 피워 낸다. 이 알뿌리식물의 출현은 식물의 역사로 보면 아주 최근의 일로 지금도 지구 전역에서 어떤 식물보다 강인한 생존력으로 더욱 진화하고 있다.

베란다 정원에 알뿌리식물이 적합한 이유도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이다. 물 주기를 깜빡 잊어도 혹은 영양분이 없는 흙에 심어 두어도 알뿌리식물은 우리의 손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잘 자란다. 또 어떤 식물보다 이른 봄, 꽃을 피우는 것도 큰 매력이고 꽃의 크기도 크기지만 노랑, 빨강 등 원색으로 화려해 초봄의 정원을 꾸미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게다가 춥거나 더운 날씨 혹은 집 안이냐 밖이냐의 구별도 없이 잘 자라 주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 알뿌리식물 하나만으로도 집 안과 베란다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꽃이 지고 난 이후다. 작은 베란다지만 사계절을 즐겨야 하는 정원에서 꽃이 지고 난 후 잎만 남은 알뿌리식물의 처리는 곤란한 일이다. 잎은 광합성 작용을 하는 사이 점점 누렇게 변색이 돼 시들어 간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예쁘지 않다는 차원을 넘어 안타까움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빨리 잎을 잘라 알뿌리만 보관해 두면 영양분을 뿌리로 내릴 시간을 벌지 못해 다음 해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이럴 때 요령은, 별도로 알뿌리만 모아 두는 흙 상자를 마련해 보는 거다. 상자에 원예상토를 넣고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등을 한꺼번에 모아 적어도 늦여름까지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자. 그리고 빈 화단에는 알뿌리식물 대신 다른 식물을 심어 계절에 따라 다른 식물을 감상하면 된다.

가을이 되면 알뿌리식물의 잎은 누렇게 시들 것이다. 이때 잎을 바짝 자르고 알뿌리를 캐낸 뒤, 햇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문지로 싸고 다시 검은 비닐 봉투에 담아 베란다 구석에 보관하면 된다. 알뿌리식물 대부분은 온대성 기후가 자생지이기 때문에 반드시 겨울 추위 경험이 필요하다. 베란다의 환경이 겨울에도 너무 따뜻하다면 차라리 8주 정도 김치냉장고나 냉장고의 야채 박스에 보관해 준 뒤, 다시 화분에 심어 놓으면 다음 해 봄에 가장 먼저 잎과 꽃을 다시 피운다.

찰스 다윈은 진화를 ‘생명체들이 지구의 역사를 거치며 원래의 형태에서 발달되거나 혹은 다양화되어 온 과정’이라고 했다. 식물도, 우리도 같은 모습으로 살지는 않는다. 생명체는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의 시간을 두고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살아가는 습성을 바꾼다. 그리고 이 진화에는 ‘좀 더 잘 살겠다’는 긍정적 발전의 의지가 숨어 있다.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조금 더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의지다.

봄이 오면 식물들은 생존을 위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힘겨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이 모습이 참으로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나만 혼자 힘든 게 아니라고 우리 모두 같이 힘내서 긍정적 진화를 해보자고 말해 주는 듯하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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