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9일 일요일 비. 임종 악기.
#154 잠비나이 ‘소멸의 시간’(2012년)
삶의 모든 순간에 음악이 함께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야속하다. 죽음의 순간에 어떤 음악을 듣게 될까까지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제부턴지 침상에 누워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는 장면이 반복해 떠오른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것이든 쳇 베이커의 것이든 서브모션 오케스트라의 것이든, 뭐든 좋다. 어떤 땐 그 애잔한 소리로 마음을 어루만지다가 수틀리면 세상이 싫은 갓난아이처럼 고음으로 앙탈을 부리는 그 허스키한 음색에 빠져든 건 마일스 데이비스를 들으면서부터지만 머릿속에서 트럼펫을 죽음의 순간과 처음 연결한 건 프레임스(the Frames) 때문이다.
영화 ‘원스’의 주인공 글렌 핸사드가 이끄는 그 아일랜드 록 밴드는 ‘원스’의 주제곡 ‘폴링 슬롤리’를 2006년 자신들의 앨범에 먼저 담았다. 부드러운 통기타가 이끄는 영화 버전과 달리 프레임스의 ‘폴링…’은 전기기타와 밴드 연주가 추동하는 록이다. 뮤티드 트럼펫(트럼펫 앞부분을 막아 소리를 변형하는 연주법)은 3분 27초에 등장한다. 범람하는 현악과 밴드 사운드를 바늘처럼 꿰뚫고 끊길 듯 말 듯 이어지는 그 위태로운 소리는 침몰하는 배, 멀미 속에서 보이는 실낱같은 희망 같다.
지난주에 난 ‘임종 악기’ 후보군에 태평소를 추가했다. 그 소리가 망치로 머리를 후려친 건 살면서 세 번쯤. 첫째는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다. 전기기타의 6번 줄 개방 현(미) 반복 악절을 중심으로 e단조로 흘러가던 악곡이 ‘난 그냥 이대로/뒤돌아 가는가’의 연결부 시작, 태평소가 ‘솔#’과 함께 등장하면서 문득 E장조로 바뀌는 소름끼치는 부분 말이다.
둘째는 잠비나이의 공연에서 ‘소멸의 시간’을 봤을 때. ‘하여가’보다 낮은 b단조로 연주되는 이 육중한 곡에서 기타리스트 이일우는 2분 22초쯤, 오른손은 그대로 기타의 개방 현을 가격하면서 왼손에 든 태평소에 숨을 불어넣어 불길한 ‘미’ 연주를 시작한다.
18일 국립국악원 ‘대한의 하늘’ 공연 막판에 등장한 대취타의 태평소가 다시 한번 날 깨웠다. 앞서 17일 국립극장 ‘임헌정과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에서 잊었던 그 악기를 다시 본 터였다. 이날 초연된 ‘천-헤븐’(정일련 작곡) 후반부에 등장한 태평소는 다른 악기들이 나무 몸통으로 형성한 삼림을 혼란 속에 헤매는 소녀 같았다. 그는 빨간 실타래를 풀며 숲의 바깥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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