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 사마장자와 우마장자가 살았다. 우마장자는 아침에 벌어서 아침을 먹고 저녁에 벌어서 저녁을 먹을 정도로 가난하였지만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도 우애가 좋았으며 동네 사람들에게도 아주 잘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사마장자는 부자였지만 하는 짓은 우마장자와는 정반대였다. 우는 아기는 꼬집고 똥 싸는 아기는 주저앉히고 새끼 밴 개는 발로 툭 차는 등 그 행실이 개차반이었다.
하루는 사마장자의 조상들이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저승의 시왕에게 가서 하소연을 했다. 사마장자가 조상 제사를 전혀 지내지 않으니, 그 조상들이 배고프고 목마른 것은 당연지사. “앉아서 듣는 말과 서서 보는 것은 다르니, 직접 가서 보고 오라.” 저승 시왕의 명령을 받은 세 명의 사자가 스님 차림으로 변장하여 사마장자의 집엘 들어가서 보니, 과연 개차반이었다. “앉아서 듣던 말과 서서 보는 것이 같습니다.” 저승 시왕의 대답. “그러면 정월 대보름날 꿈에 현몽이나 넣어 주어라.” 사마장자가 저녁이 되어 잠을 자는데, 뒷동산의 은행나무가 세 도막으로 부러져서 자기 집 방문 앞에 놓여 있었다. 꿈이었다. 벼슬할 꿈이니 음식 대접을 받을 꿈이니 하며, 식구들은 하나같이 길몽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며느리만은 흉몽이라며, 재물의 절반은 조상한테 주고, 나머지 절반은 자손한테 주어 그간에 지으신 죄를 풀어버리시라고 했다.
“어허, 그년 괘씸하다. 남의 자식이라서 해몽도 흉측하게 하는구나. 당장 쫓아내라.”
그러나 사흘이 못 가서 사마장자는 병이 났다. 온몸이 쑤시고 저려 정신이 없었다. 며느리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다. 며느리의 제안, 점을 쳐보는 게 어떨는지. 점쟁이의 대답, 곳간을 털어 굶주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저승사자가 오는 길목에 음식을 차려놓고 굿을 하면 어떨는지. 어쩔 것인가. 사마장자는 그대로 했다.
“어허, 이 길목에서 배가 고파서 못 가겠다. 이럴 때에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만 놓아주면 사마장자 죄를 면하게 해줄 텐데.”
세 명의 저승사자들이 이런 말을 하며 길을 가는데 갑자기 굿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세 저승사자는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던 참이라, 그곳으로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차려진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이때다 싶은 사마장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이 차린 음식이라고 말했다. 난감한 저승사자들. 잡아가야 할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았으니 그 정성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우마장자를 대신 잡아가려고 했지만 우마장자네 터주 신의 방해로 그마저도 실패했다. 낭패였다. 사마장자 며느리의 솔깃한 제안.
“우리 아버님이 타고 다니시던 백마를 잡아가시오. 그리고 저승에 가서 ‘사마장자가 죄를 어찌나 많이 지었던지 산 채로 말이 되어서 이 말을 끌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하십시오.”
죄 없이 잡혀온 백마. 억울하기가 짝이 없었다.
“사마장자, 이놈아! 십리를 가든 오리를 가든 너를 내 등에 태우고 다니면서 네 발에 흙 하나 묻히지 않게 해주었는데 너의 죄를 뒤집어쓰고 이런 고초를 당하게 하느냐? 어서 빨리 나를 구해 달라.”
사마장자는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말 씻김굿을 했고 백마는 인간으로 환생했다. ‘장자풀이’라는 구전신화의 결말이다. 죄 있는 사람도 억울한 게 있겠지만 죄 없는 사람(또는 동물)의 억울함만 하겠는가. 저만 살자는 정성, 그것이 문제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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