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16>평온한 일상이 덮고 있는 내면의 불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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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미묘하다. 불안과 공포는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할 때 강도가 더 커진다. 그래서 잘 만든 심리 공포영화는 주로 평온한 가정의 실내 등 평범한 일상생활을 미장센으로 한다. 친숙한 삶 속에 숨겨진 은밀한 공포는 SF영화에서 보는 요란한 공포보다 훨씬 두렵다.

오늘날 접하는 현대미술 중에는 인간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작품들이 종종 있다. 전시장에 가서 힐링을 받을 수도 있지만, 평온한 마음에 충격과 혼란을 느끼고 오는 경우도 많다.

로버트 고버(Robert Gober)의 ‘무제 다리 Un―titled Leg’(1989년 그림)는 미묘한 인간 심리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 조각은 실제 남자의 다리와 똑같이 만들어 전시장 벽에 붙여 설치한 작품이다. 마치 하얀 벽이 남자 다리를 종아리부터 자른 듯, 생뚱맞게 벽에서 뻗어 나온 다리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리얼하다. 면양말과 가죽신발, 왁스로 만든 피부, 체모를 붙여 만든 디테일까지 완벽한 수공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익힌 목공 등으로 작가의 제조 기술은 장인 솜씨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조각 설치는 관람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사람 다리가 벽에서 튀어나와 있는 이 상황을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사람의 다리는 불안과 공포를 자아낸다. 그 이유는 폭력과 탈구를 암시하는 잘려진 신체 부분이 너무도 멀쩡하고 일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러한 인간 심리를 ‘언캐니(uncanny)’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는 친숙한 것이 낯설게, 혹은 낯선 것이 거꾸로 친숙하게 되는 상태, 즉 오랫동안 잊었던 두려움이나 억압된 공포가 표면으로 올라온 마음의 상태를 지칭한다. 주로 평범한 일상에서 어떤 뒤틀리는 계기로 인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언캐니한 감정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이중 심리다.

심리 공포영화에 능숙한 감독처럼, 고버는 잠재된 인간 심리를 다루는 고도의 플롯을 발휘한다. 일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그의 조각 설치는 지극히 평범하기에 불안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다리를 모델로 삼고, 또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동성애자라는 작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깊은 내면의 고통과 불안을 표면적으로 덮고 있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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