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佛 권위의 공쿠르상, 2015년엔 ‘동물의 공쿠르’ 될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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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판가 불황타개 비책?… 동물 등장 책 표지-제목 쏟아져

소설 ‘보주 광장의 양’(왼쪽)과 ‘쥘’ 표지.
소설 ‘보주 광장의 양’(왼쪽)과 ‘쥘’ 표지.
프랑스에서는 요즘 책의 제목과 표지에 동물 이름을 넣은 소설이 유행이다. 악어, 거북이, 다람쥐, 고슴도치, 양, 개, 황새, 카멜레온, 펭귄, 송어, 해파리….

책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지만 대중의 눈길을 확실히 잡아끌기 위한 출판사의 최신 마케팅 기법이다. 그간 동물 이름이 제목에 자주 등장했던 것은 주로 아동 도서였지만, 요즘은 성인 소설과 교양도서에도 동물 이름이 대세다.

이런 경향은 카트린 팡콜의 ‘악어들의 노란 눈’, ‘거북이들의 느린 왈츠’, ‘센트럴 파크의 다람쥐들은 월요일에 슬프다’ 등 동물 이름을 넣은 3부작 소설이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생겼다. 수년 전 나왔던 뮈리엘 바르베리의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프랑스에서 30주 연속 베스트셀러 종합 부문 1위를 차지한 뒤 영화로 만들어졌다.

올해 발행됐거나 출간 예정인 책 제목에도 동물 이름이 초강세다. 다니엘 피쿨리는 이달 초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를 다룬 소설 ‘이구아나의 조용한 외침’을 펴냈다. 이구아나는 작가의 내면에서 할아버지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작가 카트린 시귀레는 다음 달에 ‘보주 광장의 양’을 펴낼 예정이다. 파리에서 가장 세련된 멋쟁이들이 지나다니는 보주 광장 한복판에서 여주인공이 코르시카에서 양을 가져와 키우는 이야기를 다뤘다. 사회적 금지와 관습에 휩싸인 사람들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코믹한 소설이다. 디디에 반 코벨라르트의 소설 ‘쥘’의 표지에는 하이힐을 신은 골든레트리버 종의 개가 등장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쥘은 맹인안내견의 이름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펴냈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는 4월 말에 미국 작가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카멜레온 같은 두 연인’을 펴낸다. 아프리카 작가인 치카야 우탐시는 ‘바퀴벌레’ ‘해파리’ ‘나방’ 등 3부작 소설을 펴낼 예정이다. 이 밖에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소설 ‘슬라브의 송어’, 드니 레페의 역사소설 ‘늑대와 사자’도 출간될 예정이다.

미디 출판사에서 다음 달에 출간되는 책 네 권은 동물원 수준이다. 게를랭의 ‘꿀벌’, 크리스티앙 비올레의 ‘고양이의 인생’, 제이슨 매슈스의 ‘붉은 참새’, 소피 에나프의 ‘구워진 닭’…. 이 책들은 모두 제목의 동물과는 별로 상관없는 스릴러물이다.

작가 질베르 시누에는 1956년부터 1970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던 나세르 장군의 전기 제목을 ‘이집트의 독수리’로 정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작가 모옌의 ‘원숭이 교수’도 다음 달 프랑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올해 최고 권위의 프랑스 문학상인 공쿠르상이 ‘동물의 공쿠르’로 불리지 않을까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출판의 불황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신문 르피가로는 “영국에서는 소설가 10명 중 1명만이 글쓰기로 먹고산다고 하는데, 프랑스도 나을 게 없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이고 그중 20%는 1년 동안 소득이 한 푼도 없다. 책표지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출판 불황을 타개하려는 출판사 편집자들의 몸부림인 셈이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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