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방한 폴 매카트니팀 식단은 ‘풀밭 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2015년 5월 3일 일요일 흐림. 환대 조건.
#156 Ben E King ‘Stand by Me’(1961년)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난 미국 솔 가수 벤 E 킹. 벤 E 킹 스탠드 바이 미 재단 홈페이지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난 미국 솔 가수 벤 E 킹. 벤 E 킹 스탠드 바이 미 재단 홈페이지
1∼3일 처음 내한한 팝의 전설 폴 매카트니는 어디에 묵었을까.

S호텔도, H호텔도, I호텔도 아닌, R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었다. 매카트니가 “숙소는 반드시 공연장(잠실종합운동장)과 가까우면서 발코니가 있는 호텔로 잡아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공연 관계자는 “전 세계의 호텔만 돌며 자다 보니 답답한 게 싫었던 게 아닐까”라고 배경을 추측했다. 매카트니는 호텔 방에 데이지 화병을 놓아 달라고도 했다.

해외 팝스타들은 방문 국가의 공연 주관사에 예외 없이 공연 계약서의 부칙 격인 ‘라이더(rider)’를 보내 필요한 준비를 부탁한다. 공연에 직결된 장비, 시설과 관련된 ‘테크니컬 라이더’ 못잖게 중요한 것이 의식주, 주변 환경에 관한 ‘호스피탤리티 라이더’다.

호스피탤리티 라이더는 곧잘 한국 담당자의 땀이나 한숨으로 연결된다. 호텔 방을 수백, 수천 송이의 장미꽃으로 장식해 달라는 이도 있으니까.

미국 래퍼 E는 2012년 내한 때 “호텔 방 온도를 16도로 맞춰 달라”고 했다. 호텔에 설치된 온도조절기의 가장 작은 숫자는 세계 어딜 가나 대개 (섭씨) ‘18’(도). 담당자는 고심 끝에 호텔과 협의해 천장을 뚫고 냉방용 실외기 하나를 추가로 달아 한계온도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매카트니는 양반이었다. 다만, 그는 1975년부터 채식주의자다. 전세기로 데려온 80명 넘는 스태프 중 요리사들도 있다. 셰프를 대동한 퀸, 라디오헤드도 미리 이것저것 장을 봐 달라고 주문했지만 매카트니 쪽 주문은 좀 달랐다. 내한 기간 내내 국내외 스태프 모두 요리사가 조리한 채식 식단을 똑같이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영국 가수 모리시(Morrissey)는 밴드 스미스에 몸담았을 때 앨범 제목을 ‘고기는 살육’(Meat is Murder·1985년)으로 정했을 정도로 극단적 채식주의자다. 그의 스태프는 순회공연 내내 채식을 해야 한다. 2012년 내한 때 그가 대동한 스태프 중 일부는 한국 담당자에게 “외식 좀 시켜 달라”고 졸랐다. 한국 불고기를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고.

지난달 30일 ‘스탠드 바이 미’로 유명한 미국 솔 가수 벤 E 킹이 뉴저지 주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그의 호스피탤리티 라이더가 무엇이었는지 난 모른다. 다만, 저 세상에 바라는 최고의 ‘환대 조건’은 그가 노래로 잘 부탁해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산이 무너져 바다에 묻힌대도 울지 않을 거예요. 당신만 곁에 있다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폴 매카트니#벤 E 킹#스탠드 바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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