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인터플레이’ 기획전에 전시된 지니 서의 ‘유선사’. 개별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억지스럽게 설정한 주제 아래 뜬구름 잡는 말로 묶으려 하는 전시기획의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오페라단이 최종 결정권자 없이 표류한 지 수개월째다. 방향타를 잡아야 할 수장의 부재로 해마다 적잖은 예산을 사용하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오페라단은 체계적인 운영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예정돼 있는 ‘최소한’의 업무를 처리하는 데 급급한 형편이다. 운영 과정을 살피고 업무 결과를 책임지는 리더가 없는 가운데 나타난 실무 파행과 작품의 질적 저하는 결코 해당 기관의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
국내 유일의 국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장 없이 운영된 지 반년이 지났다. 정형민 전 관장(63)이 지난해 10월 15일 학예연구사 부당채용 혐의로 직위 해제된 뒤 줄곧 ‘선장 없는 배’ 신세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달 내로 새 관장을 선임할 것”이라고 했다. 3월에 들은 답변은 “4월 중”이었다. 이르면 3월 중순 마무리되리라 전망됐던 신임 관장 인선이 한없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장(63)과 미술평론가 윤진섭 씨(60)가 최종 후보로 압축됐다고 알려졌으나 이후 다시 한 달 넘도록 결과가 나오지 않자 미술관 안팎에서는 “두 사람 모두 인사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처음 후보 선정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두 사람 모두에 대해 의외라는 평가가 적잖았다. 과거 업무 실적과 평판을 꼼꼼히 점검하는 과정을 넘어가기가 수월하지 않았으리라는 후문이다.
임용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뒤숭숭한 뒷공론의 진위에 관계없이 미술관 운영은 무게중심을 잃고 뒤뚱댄다. 배의 ‘선장’ 격인 관장 부재에 이어 최근 한 달 동안은 ‘항해사’라 할 수 있는 선임학예연구관 자리마저 공석이었다. 최은주 전 학예연구1실장이 3월 말 경기도미술관장으로 옮긴 공백을 지난달 24일에야 후임으로 메웠다. 서울의 한 미술관 관계자는 “관장이 없는 데다 학예실장까지 잃은 채로 예정된 전시를 숙제 해치우듯 실속 없이 진행하는 미술관을 왜 국고(國庫)로 계속 운영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현장업무 리더와 행정절차 결정권자를 정하지 못한 사이 부실한 운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미술관 운영 자금의 원천인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 몫이 되고 있다. 문체부에 보고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예산 총액은 484억 원. 지난해 708억 원보다 224억 원 줄어든 금액이다. 차액의 대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할 충북 청주 미술품수장보존센터 건립 예산이 차지한다. 2013년 공모를 통해 설계 당선작을 선정했지만 지난해 사업이 전면 보류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장보존센터사업 담당자는 “상세설계 결과 총사업비가 당초 예상 금액의 2배에 이르는 603억 원으로 책정돼 기획재정부로부터 타당성 재검사 권고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작품 수장고에서 전시관으로 공간 용도가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운영 책임을 지는 수장이 없다 보니 연간 예산의 25% 이상을 차지한 사업이 허무하게 길을 잃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전시 운영 역시 곳곳에 빈틈투성이다. 한 미술평론가는 “근무 안정화를 저해한다면서 필사적으로 법인화 움직임에 반대했던 ‘공무원 전시전문가’들이 새 관장 부임 뒤 엎어지거나 책임져야 할지 모를 업무를 방치하고 있다. 올해 가장 중요한 기획전이라 할 광복 70주년 기념전이 어느 정도 내실 있게 준비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지난달 개막한 ‘인터플레이’ 기획전에 대해서는 하나의 주제로 엮을 까닭이 없는 작품들을 맥락 없이 파편처럼 늘어놓았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그럴듯한 언어를 앞세워 눈속임하려 했지만 전시 공간에 대한 치밀한 연구나 변화의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지난해 11월 엉성한 자료 진열로 혹평을 받은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전을 비롯해 허울뿐인 부실 전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 미술계 중견 인사는 “미리 발표한 한 해 전시계획에서 채워 넣기로 정해놓은 시간과 공간만 무성의하게 때우고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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