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쪽으로 가는 길에 어떤 강을 건너는데 마침 우리 배와 나란히 건너가는 배가 있었다. 두 배는 크기도 같고 사공 수도 같았으며 타고 있는 사람이나 말의 수도 거의 비슷하였다. 그런데 조금 후 보니 저쪽 배는 나는 듯이 달려 벌써 저쪽 나루에 닿았는데 내가 탄 배는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李奎報) 선생이 여행 중에 배를 탔습니다. 나루가 제법 크기에 배 두 척이 나란히 달려 나갔겠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크기도 비슷하고 승객이나 짐도 비슷한데 저쪽 배는 벌써 건너편에 도착한 반면 이 배는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거지? 의문을 나타내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이야기합니다. “그야 저 배는 사공에게 술을 먹였으니 사공이 온힘을 다해 노를 저을 수밖에요.”
술을 먹여 사공을 기분 좋게 만들어 열심히 노를 젓도록 한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이쪽 배에 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술을 좀 먹일 걸. 이제라도 돈을 얼마씩 걷어서 줄까? 아니지, 우리도 정당하게 뱃삯을 내고 탄 건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규보 선생의 생각은요?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탄식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아, 이 보잘것없는 갈대 잎 같은 배가 가는 데도 오히려 뇌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앞으로 나가는 게 빠르고 느리며 앞서고 뒤처지는 일이 생기는 법이거늘, 하물며 풍파 몰아치는 벼슬길에서 경쟁을 하면서도 내 손에 돈 한 푼이 없었으니 내가 오늘날까지 하급 관리 하나도 얻지 못한 것이 당연하구나(況宦海競渡中, 顧吾手無金, 宜乎! 至今未霑一命也).”
이 글의 제목은 ‘주뢰설(舟賂說)’입니다. 뢰(賂)는 뇌물이라는 뜻입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일에도 작용하는 뇌물의 힘, 부패의 위력을 절감한 이규보 선생은 뛰어난 능력을 갖췄음에도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자신의 벼슬살이를 떠올리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뇌물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늘 그래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게 있습니다. 이익 보자고 뇌물 주고받는 짓이 나쁜 건 알겠는데 주는 사람이 나쁜 건지 받는 사람이 더 나쁜 건지, 뇌물 받고 청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쁜 건지 받고도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 더 나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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