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정원의 속삭임]창문에서 텃밭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7일 03시 00분


햇볕이 잘 드는 창문이라면 어디에서나 윈도 파밍이 가능하다. 페트병을 이용해 셀러리를 심은 모습. 오경아 씨 제공
햇볕이 잘 드는 창문이라면 어디에서나 윈도 파밍이 가능하다. 페트병을 이용해 셀러리를 심은 모습.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도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집과 직장을 오갈 뿐이다. 정원을 만들 공간도 없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가꿀 시간이 없으니 정원은 결국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러나 꼭 그럴까?

미국 뉴욕의 빌딩 속에서 한 여성이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햇살만 있으면 실내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페트병을 잘라 식물의 뿌리가 퍼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거기에 채소를 심었다. 그리고 그 페트병 수십 개를 주렁주렁 창문에 매달아 놓으니 창문 자체가 식물을 키우는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이 낯선 시도를 한 그녀의 이름은 브리타 라일리. 2009년의 일이었고, 뉴욕의 그녀 아파트가 첫 시작이었다.

요즘 우리는 그녀가 시도한 이 정원을 ‘윈도 파밍(Window farming)’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창문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상추 허브 토마토 등 채소를 기르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사실 하나는 실내공간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얼마든지 상추, 허브를 재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이 윈도 파밍에는 원예 상토라는 유기물 흙을 이용하지만 물로 키우는 이른바 수경 재배도 가능하다. 물론 이 물 속에는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

이 윈도 파밍은 지금도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진행형 정원이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적으로 또 미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는 집집마다 길러 먹는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뉴욕과 같은 건물 밀집지역에서는 여러 건물에서 재배한 윈도 파밍 채소를 모아 공급하는 상업 형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먹을거리의 공급과 함께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 측면이다. 옆 건물의 뒤통수를 늘 바라봐야 하는 것은 도시인들에게는 가장 큰 답답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 초록의 싱그러운 창문은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 창문에도 윈도 파밍이 가능할까? 아주 간단히 페트병으로 시도할 수 있다. 매다는 형태, 층층이 쌓은 형태 등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데, 아주 기본적인 쌓기 방식을 소개한다.

페트병의 3분의 2 지점을 가위로 잘라준다. 그리고 주둥이가 있는 윗부분 중간 옆면에 식물의 잎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내준다. 여기에 원예 상토를 넣고 식물을 심고 잘라둔 아래 페트병에 잘 맞춰준다. 맨 아래 페트병은 일종의 물을 담아 두는 저장소가 되고 뚜껑이 있는 윗부분은 식물을 키우는 공간이 된다. 이렇게 한 단이 완성된 후에 다른 페트병으로 다시 윗부분을 만들어 반복해 올려주면 아파트 개념의 층층 텃밭이 생겨난다. 이걸 햇볕이 잘 드는 창문가에 세워 두거나 매달아 두면 된다.

16세기를 살았던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오늘날로 말하면 철학자이기 전에 유능한 정원사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정원에서 사계절 식물과 함께하며 에세이를 썼는데 마치 오늘날을 예측한 듯한 문구가 있어 지금도 많이 인용된다.

“신은 맨 처음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원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 되었다. 정원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정화시키는 장소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명과 우아함을 좇아 정원이 없는 건물과 궁전을 더욱 견고히 짓는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정원을 다시 만들게 될 것이다. 정원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완성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베이컨이 예측했던 상황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원을 갈망하고 있는 듯하다. 아주 낙관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결국 이 도시 환경 속에서도 가능한 ‘진화된 정원’을 찾지 않을까. 그 힌트를 윈도 파밍에서 살짝 엿보기도 한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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