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힘들 때 가장 반가운 말은 ‘밥 먹자’는 말이다. 맛과 멋을 곁들인 산해진미의 식사는 저리 두고라도 먹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할 때, 이는 생존본능을 충족시키는 일이다. 먹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를 함께함으로써 이루어진 관계는 동등하며 끈끈하다.
1990년대 초,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는 여느 전시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전시장에는 작품 대신 조리대, 냉장고, 조리용구 등으로 된 부엌이 있었고, 관람 공간은 탁자와 의자로 채워졌다. 거기서 작가는 태국 음식을 요리해서 관람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무상으로 제공했다.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의 대표작품 ‘무제-무료(Untitled-Free)’였는데, 그것이 20년 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다시 설치되었다(2011년·그림).
작가는 전시장 안에서 카레와 팟타이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제공해서 미술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림이나 조각이 놓여야 할 백색의 고급스러운 공간은 순식간에 일반음식점으로 변했다.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고 관객이 먹다 남긴 음식물과 사용한 그릇들, 요리하다 튄 기름 얼룩과 흘린 국수 가락 등. 이곳에서 관객이 마주한 것은 평범한 가정집 주방의 요리기구와 식재료,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이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음식이 아니다. 음식은 관객의 참여를 이끄는 매개이자 수단일 뿐이다. 티라바니자의 설치 퍼포먼스에서 관객은 수동적 감상자에서 활동적인 참여자로 전환된다. 카레와 국수를 먹고 친구나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작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작업의 주제는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 및 사회적 상호작용, 한마디로 관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21세기 현대미술의 화두인 ‘관계 미학’의 실천이다.
티라바니자의 작업은 소유와 축적의 방식을 폄하하고, 작가를 내세우지 않는 공동작업이란 점에서 인정받는다. 이 작업은 1960년대 후반 미술을 상품화시키는 경향에 반대하며 나온 개념미술의 비판적 움직임,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보다 미술작업을 체험하자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할머니가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태국의 유명 요리사인 덕분에 부엌이라는 공간에 익숙했다. 그리고 그는 물욕을 내려놓으라는 불교의 교리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현대사회의 고립된 개인들 사이에 상실된 관계를 상기시키고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물적 소유에 경종을 울린다. 고급문화의 상징인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그처럼 ‘전시답지 않은 전시’를 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방가르드의 저항정신과 예술적 배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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