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의 혼잡한 지하철 안.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 2명이 마주보며 다정히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침묵한다. 서로의 눈을 지긋하게 바라보더니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뜨겁게 포옹하고 입맞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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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유력지 뉴욕타임스(NYT) 주말 섹션의 이른바 ‘우리 결혼해요’ 코너. 매주 결혼식을 앞둔 커플 수십 쌍이 활짝 웃는 사진과 함께 ‘천생연분’이 된 사연을 짧게 소개한다. 10쌍 중 최소 한두 쌍은 남남 또는 여여의 동성(同性)커플이다.
동성커플이나 동성결혼에 아직은 덜 익숙한 한국인에겐 낯설지만 뉴요커들에겐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들이다. 뉴욕은 2011년 미국 50개 주 중 6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그 직후 이들을 위한 관광 상품까지 개발했다. ‘뉴욕이야말로 성적(性的) 소수자(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관광객들의 허브(중심)’라고 선전하며 ‘뉴욕에 와서 (동성)결혼하고, 신혼여행도 즐기라’는 취지의 ‘뉴욕 아이 두(NYC I Do)’ 캠페인을 크게 전개했다. 고소득 전문직이 많은 LGBT 관광객들이 단 1년간 창출한 경제적 효과만 2억5900만 달러(약 2800억 원)에 이른다고 뉴욕 시는 밝혔다.
일간지 USA투데이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과반(51%)이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특히 18∼34세 젊은 세대의 지지율은 60%에 이르렀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첫 선거 캠페인 동영상에도 결혼을 앞둔 게이(남자 동성애자) 커플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표적 ‘게이 운동가’이자 방송 진행자 겸 언론인인 미켈란젤로 시뇨릴리 씨(55)의 신간 ‘끝나지 않았다(It‘s Not Over)’는 “LGBT의 진정한 인권 보장을 향한 길은 아직 멀었다”고 선언한다.
그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같은 유명인사들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내가 게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마치 LGBT의 인권에 관한 문제는 전혀 없는 듯 착각되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학교, 직장 등에서 LGBT에 대한 공공연한 따돌림이나 차별이 여전히 심각하고, 집을 빌리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도 LGBT란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체적 사례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저자는 “차별받던 흑인이나 여성이 현재 누리고 있는 기본권이 LGBT에게도 확보되려면 혁명적 수준의 교육과 가열한 권리 쟁취 투쟁이 전개돼야 한다”며 ‘투쟁 지침’을 조목조목 나열하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달 7일 맨해튼 라파예트 스트리트의 한 건물에서 열린 그의 강연회에 직접 참석해 그에게 향후 투쟁 계획을 물었다. 그는 “‘LGBT 권익 보호’를 주창하는 클린턴 전 장관을 최대한 압박할 것”이라며 “LGBT 문제가 단순한 ‘관용(tolerance)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평등의 실현으로 하루빨리 해소되려면 대선의 주요 어젠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 기고문(4월 25일자 26면 ‘한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생각하며’)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 속에 한국의 대응은 늦고 서투르다”고 진단했다. LGBT 이슈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사회적 현상이란 점에 동의한다면 이 신간을 일독할 필요가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 책을 ‘LGBT 인권 운동의 바이블’이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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