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중에 특별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대륙에서만큼은 사람들이 매우 진지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대륙에선 그렇지 않은데 대체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그러다 고원의 사바나 초원에서 사파리 투어를 취재하던 중 그 실마리를 찾았다. 사실 아프리카 야생동물이라고 해서 그리 특별할 건 없다. 대개는 이미 동물원에서 봤거나 TV를 통해 지겹도록 보아 온 것들이다. 그러니 식상할 만도 한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잘 아는 동물에게도 놀라우리만큼 집중했다. 그리고 침착하고 세심하게 동물과 주변을 관찰했다. 마치 자신이 실제로 사냥에라도 나선 듯.
사파리 투어의 현장은 밀렵으로부터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거대한 자연공원이다. 남아공의 크루거 국립공원만 해도 그 넓이가 경상북도만 하다. 그런 곳을 아프리카에선 ‘게임 리저브(Game Reserve)’라고 부른다. 여기서 ‘게임’은 ‘야생동물’이다. 그 투어엔 늘 전문 가이드가 동행한다. 그들의 목표는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 등 소위 ‘빅 5’를 찾아 보여 주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그 과정에서 가젤 스프링복 등 사슴류와 얼룩말 기린 등 다양한 초식동물을 만난다.
사파리 투어에서 참가자들이 보여 주는 신중함과 집중력. 나는 그게 그저 호기심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사파리 투어에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됐다. 사냥감을 고르거나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라는 걸 눈치챘다. 조금 심오한 표현을 빌리면 문명이란 힘에 의해 도태됐다고 간주해온 ‘인간의 야성(野性)’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런 생각은 한 이벤트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내가 사파리 투어 현장에서 눈으로 좇던 동물이 전날 밤 ‘게임미트 바비큐’에서 맛본 야생동물 중에서 가장 맛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야생동물 맛보기는 인간의 숨겨진 야성을 되살리기 위한 의도된 이벤트였다.
아프리카는 인류의 발상지다. 바닷물의 유기물질이 단세포로 변한 곳(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도, 그게 물고기를 거쳐 육상에 진출하고, 유인원에서 영장류(사람)로 진화한 지난한 과정이 이뤄진 곳도 아프리카다. 그런 만큼 인간 심연엔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고 나는 본다. 그걸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의 한 원시 마을에서 어렴풋이 확인했다. 나를 포함한 관광객이 마을 사람들에게 보인 사려 깊은 관심이다. 연민의 정까지 느껴질 정도의…. 움막에서 대가족이 벌거벗은 채로 살아가며 고통과 질병을 아직도 주술로 치료하는 미개한 원시부족인데도, 겉보기엔 우리와 통할 어떤 것이 거의 없어 보였는데도 그랬다.
현생인류는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남으로써 오늘에 이르렀다. 170만 년 전의 일이다. 그 주인공은 ‘호모 에렉투스’.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화석인류다. 이후 인류의 발전은 비약적이었다. 그 결정적인 이유, 그건 두 손의 사용이다.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두 손은 해방됐고 그 두 손으로 불을 다루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 덕분에 지능도 발달해 170만 년 동안 뇌 용량은 300cc나 늘었다. 인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직립보행, 그건 요즘말로 ‘모바일’이고 ‘핸즈프리’였다.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21세기도 다르지 않다. ‘스마트’ 자체가 ‘모바일’과 ‘핸즈프리’를 시사해서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다닐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게 하는 모바일, 양손을 도구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그 손으로 더 유용한 것을 할 수 있게 만든 핸즈프리.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는 포노 사피엔스(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가 됐다. 지금 구글이 도전하는 새로운 디바이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구글 글래스가 그렇고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가 그렇다. 이 역시 핵심 가치는 자유로운 이동과 두 손의 해방, 모바일과 핸즈프리다.
170만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 인류가 추구한 핵심 가치가 같음을 일깨워 준 나의 아프리카 여행. 거기서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무언가 세상을 바꾸길 꿈꾼다면 사람의 두 손부터 해방시키라고. 두 손이 인류를 자유롭게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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