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실크 스카프 장인 카멜 아마두 인터뷰…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의 비밀
“딱 보면 알죠, 에르메스니까”
지난달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월드몰 지하 1층. 하얀색 테이블 위에 가로 세로 90cm 크기의 하얀색 실크 스카프가 놓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밑그림이 스케치 된 하얀색 실크 캔버스에 가까웠다. 에르메스의 프랑스 파리 생토노레 매장과 사무실을 재치 있게 그려 낸 ‘실크하우스(매종 데 카레)’ 스카프의 밑그림이었다.
여기에 색을 어떻게 입힐까. 수없이 스카프를 매고 다녔지만 스카프에 색을 어떻게 입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그럴 것이다. 여기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이날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 프랑스 리옹의 에르메스 실크 공방에서 장인 2명이 한국을 찾았다. 카멜 아마두 씨(55)와 프레데리크 리보 씨였다. 기자와 이날 인터뷰를 한 아마두 씨는 28년째 에르메스 실크 장인으로 일해 온 장인으로 꼽힌다.
스카프 한 장에 걸리는 시간, 2년
‘실크 하우스’ 밑그림에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1층에서 손님을 맞는 점원들, 3층에서 스카프를 만드는 사람들, 옥상 공원에서 물을 주는 정원사도 등장한다. 이들의 얼굴은 모두 살색이다. 점처럼 보이는 손가락도 있다. 아마두 씨는 점처럼 보이는 밑그림을 가리키며 “어떻게 색이 칠해지는지 보라”며 웃었다.
장인이 10kg 무게의 사각형 프레임을 밑그림만 그려진 흰색 스카프 위에 정교하게 맞췄다. 철판으로 된 프레임에는 살색이 칠해질 부분만 뚫려 있었다. 여기에 살색 염료를 정성껏 바르면? 밑그림 스케치 속 사람들 얼굴에 살색이 덧입혀졌다.
“이 ‘실크 하우스’ 스카프에는 색깔이 35개 필요합니다. 그러면 프레임도 35개가 필요하겠죠.”
아마두 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디자이너가 밑그림을 그리면 색채 디자이너가 색을 결정하고, 색에 맞게 프레임을 제작하는 데에만 1년 이상이 걸린다”며 “여기에 일일이 손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을 더하면 실크 스카프 한 장을 만드는 데 2년이 걸리는 겁니다. 프랑스 리옹의 전통 실크 프린팅 기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판으로 된 프레임을 제작하는 데에만 6개월 이상이 걸린다. 이것도 기계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밑그림에 맞춰 정교하게 프레임을 파는 장인이 따로 있다. 에르메스 하우스의 실크 염료의 레시피도 ‘극비’ 사항이다. 에르메스는 약 7만5000개의 염료를 가지고 있다. 스카프 하나를 만드는 데 2년이 걸린다면 현재 내후년에나 나올 스카프를 디자인하고 있다는 얘기다. 매년 유행하는 색과 디자인이 바뀔 텐데 트렌드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걸까.
“에르메스는 자유롭습니다. 결단코, 결단코, 결단코, 유행을 따라본 적이 없습니다.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곧 유행의 시작이니까요.”
아마두 씨는 프랑스어로 강한 부정을 의미하는 자메(jamais)를 세 번이나 써가며 강조했다.
“멀리서 봐도 에르메스 스카프인줄 안다”
“좀 다르죠?”
아마두 씨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한 여성을 향해 눈짓했다. 그녀는 실크 스카프를 매고 있었는데 밝은 핑크색 계열이었음에도 톤이 다운된 느낌이었다. 왜 밝고 ‘쨍한’ 빛깔을 내지 못할까?
“이것이 바로 잉크젯과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실크 스크린의 차이예요. 잉크젯은 겨우 3개의 색깔을 섞어 내기 때문에 색의 제약이 큽니다. 직접 염료를 만들어 색을 손으로 칠하는 우리와 차이가 크죠.”
실제로 명품을 표방하는 상당수 패션 하우스들은 기계 프린팅을 한다고 한다. 시간이 절약되고,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처럼 전통 리옹 방식을 고수하는 곳은 드물다. 그래서 아마두 씨는 멀리서도 에르메스 특유의 색을 간직한 스카프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양한 디자인, 촉감(실크의 질), 색채감 세 가지가 우리 스카프의 자부심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1937년 에르메스가 첫 실크 스카프를 만든 이래 기계가 한 일이라고는 가열대(실크 프린팅을 하는 테이블)위의 프레임을 옆으로 이동시켜주는 것뿐이에요. 0.0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적당한 무게감으로 색을 입히는 것, 그것이 우리 장인들의 자부심입니다.”
▼ “실제 본점 그린 ‘실크 하우스’, 제 모습도 찾아보세요” ▼
원래 실크 스카프는 군대에서 쓰였다고 한다.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이를 여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발굴한 곳이 바로 에르메스다. 실크 프린팅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프랑스 리옹 지방에 공방을 만들어 실크 프린팅을 하기 시작했다.
리옹에서 태어나 28년째 리옹 공방의 장인으로 일해 온 아마두 씨는 “한 번도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실크 스카프 장인이라는 일이 너무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들고 있던 주황색 스카프를 얼굴에 묻으며 말했다.)
에르메스는 매년 봄·여름과 가을·겨울 시즌에 각각 새로운 스카프를 10개씩 선보인다. 1년에 20여 개 디자인이 나오는 셈이다. 그의 손을 거쳐 제작된 스카프는 약 1000장이 넘는다. 수많은 스카프를 만들었지만 그중에서도 애착이 가는 작품은 2012년 가을·겨울 시즌에 나온 앙투안 차포프가 디자인한 ‘와코니’라는 스카프다. 무려 46가지 색이 들어간다. 10kg에 달하는 프레임을 46개 제작했다는 뜻이다. (에르메스 스카프의 평균 색깔 수는 25개다. ) 이 스카프는 아티스트 차포프가 19세기 중반의 미국 원주민 여성의 얼굴을 디자인한 그림을 품고 있다.
아마두 씨는 “행운을 주는 스카프라 늘 가지고 다닌다”며 “한국에도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올 봄·여름 시즌에 나와 이번 시연행사에 선을 보인 ‘실크 하우스’도 그에겐 특별한 제품으로 꼽힌다. 에르메스 실제 직원들이 모델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원에 물을 주는 정원사는 야스미냐 씨로 실제로 늘 지붕 위의 정원에 있다. 스카프 속 지붕쪽에는 현 최고경영자(CEO)인 악셀 뒤마 회장도 있다”며 “나는 3층 왼쪽 방에 그려져 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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