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내가 선 자리가 바로 룸비니 동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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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해인사승가대학장 원철 스님

지난해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연등회 행사에 참석한 스님과 불자들이 두손을 모아 세상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를 기원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지난해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연등회 행사에 참석한 스님과 불자들이 두손을 모아 세상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를 기원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몇 년 전 어느 봄날,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이른 아침 룸비니 동산(붓다 탄생지)으로 가는 길은 옅은 안개가 기분 좋을 만큼 깔려 있었다. 호텔에서 입구까지 교통편은 자전거와 손수레를 합쳐 놓은 모양을 한 2인용 릭샤였다. 안개 속에서 수십 대가 대열을 만들더니 순서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차례가 돌아와 남들처럼 엉덩이를 걸치고 두 무릎을 편 상태로 이동하면서 사람 보는 것을 관광거리로 삼아 앞뒤를 살폈다. 그렇게 짙은 안개라고 할 수도 없는데 가는 길이 구불구불한 까닭에 전후에 있는 한두 대 정도만 겨우 내 눈 안으로 들어올 뿐이다.

“나의 그리움을 알아/새벽안개되어 내게 온 당신/당신을 그리워하는 이 시간에/새벽안개 되어 내게 오시니/눈물이 날만큼 좋습니다”라는 시인 김정래의 시 몇 줄을 게송 삼아 읊조리기를 마칠 무렵 릭샤는 멈추었다. 일행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둔덕길에서 늪 언저리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연꽃은 마른 줄기만 듬성듬성 남긴 채 자기 흔적을 스스로 지워 버린 상태였다. 붓다께서 2600여 년 전 이 근처에서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이 세상 사람을 편안하도록 만들겠다(아당안지·我當安之)’는 다짐을 하자 내딛는 발끝마다에서 연꽃이 피어났다고 했다.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객의 긴 줄 마지막 뒤를 이었다. 나눠 준 덧신으로 갈아 신고서 마야 사원으로 들어갔다. 룸비니는 성모당(聖母堂)이 중심이다. 붓다 위주의 다른 성지들과는 달리 이곳은 붓다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주인공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국 후베이 성 황메이산 오조사에는 홍인 선사(594∼674)의 어머니 영정을 모신 성모전이 있으며, 한국 전북 김제 만경벌에도 조선 중기 진묵 대사(1562∼1633)의 모친을 모신 성모암이 있다. 충청도에서 터를 잡은 도반은 야트막한 언덕에 새 절을 짓고는 ‘성모산 마야사’라는 편액을 달았다. 알게 모르게 그 전통은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해가 뜰 무렵 안개가 사라지면서 오래된 큰 나무 몇 그루와 연못이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경전을 통해 설명하는 룸비니 동산은 절집 안의 이상향이다.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린 마야 부인이 친정집에 몸을 풀러 간다는 현실조차 잠시 잊게 만드는 오월 꽃동산은 그 자체로 샹그릴라였다. 1400여 년 전에 이 동산을 찾았던 당나라 현장 법사(622∼664)는 ‘물이 맑아 거울과 같고 주변에는 갖가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고 마야 부인은 출산 후 설산에서 발원하는 기름처럼 반짝이는 맑은 개울인 유하(油河)에서 몸을 씻었다는 사실까지 함께 언급하고 있다. 아홉 마리 용이 태자를 목욕시키기 위해 번갈아 입으로 내뿜었다는 물은 아직 이 연못의 어딘가에 한 방울이라도 남아 있을까?

이 정원은 마야 부인의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전한다. 두 어른의 인생 황금시절에 조경했다. 하늘정원의 아름다움을 땅 위에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명품이었다. 아예 화원 명칭까지 할머니 이름인 ‘룸비니’라고 붙일 정도로 금실을 자랑했다.

잎들이 꽃보다 아름답고 눈이 부시도록 푸른 연둣빛 계절이다. 눈 닿는 모든 곳은 모두가 룸비니 동산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일년 가운데 오월 한 달만큼이라도 세상 모든 이를 가족처럼 여길 수만 있다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건 바로 룸비니 동산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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