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취재를 위해 이달 초 처음 방문한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다시는 찾아가고 싶지 않은 도시였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왜 그렇게 한풀이하듯 악착같이 받아내려 했는지 돌이켜 수긍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비엔날레는 고색창연한 동시에 고리타분한 이 도시의 가장 유용하고 중요한 생계 방편이었다. 건축과 미술 비엔날레를 해마다 번갈아 여는 베네치아 사람들은 한 해의 절반을 비엔날레 준비에, 나머지를 비엔날레에 쓴다. 다른 모든 경제 활동은 그 주 동력원의 운행을 뒷받침하는 보조 장치에 불과해 보였다. 음식의 가격 대비 품질은 하나같이 극악무도했다. 주방에 들어가서 파스타를 만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여러 번 들었다. 아시아인 방문객에게 서비스업 종사자의 친절이란 젊은 여성이어야만 요구할 수 있는 항목인 듯했다. 8년 전 러시아 이후 최악의 인종차별을 이번에 지겹도록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방문객으로 언제나 북적인다.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호텔과 식당 직원이 아무리 무례해도 이곳은 어쨌거나 ‘한 번쯤 가볼 만한 도시’인 거다. 음식을 굳이 애써 맛있게 만들고 친절하게 서비스할 동기가 부족할 만하다.
사과 한 알 얻어먹을 수 없이 마냥 퍽퍽했던 호텔 조식 레스토랑에서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와 몇 차례 마주 앉았다. 2월 선임된 박 대표는 “광주비엔날레를 2년에 한 번 열리는 관 주도 행사가 아니라 베니스 비엔날레처럼 도시를 먹여 살리는 구심점이 되도록 만들고 싶은데 여러 여건상 변화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이야기한 어려움은 대체로 예산 활용과 사업 진행 권한에 집중됐다. 이용우 전 대표를 사임하게 만든 지난해 ‘세월오월’ 전시 논란에 대한 견해를 굳이 끄집어내 캐물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광주 정신’은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니까요.”
착잡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어떤 예술 정신에 취하러 오는 이가 얼마나 될까. 베니스 비엔날레는 영리하게 벌여 놓은 장사판이다. 음식이 맛없고 사람들이 불친절해도 사람들은 ‘예술의 도시’로 뿌리박은 이미지에 혹해 일단 그곳을 찾는다. 광주비엔날레는 20년의 세월을 쌓으며 양적으로 놀랍게 성장했다. 하지만 광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 도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가. 세계 예술의 한 단면을 확인하려면 이동경로가 아무리 불편해도 어쨌거나 반드시 한 번쯤 찾아가봐야 할 도시로 입지를 굳혔는가. 답은 박 대표와 광주비엔날레 관계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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