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해외에서 열린 남아프리카 사진작가의 기획 사진전이었다. 작가는 수년간 다이아몬드 채굴 광산의 사진을 찍었다. 채굴 터는 지상에서 수 km나 깊이 들어갔는데, 마치 지구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듯 섬뜩했다. 작가는 그 사진의 중심부에 채굴된 다이아몬드의 총량과 같은 모형을 만들어 꽂아 놓고는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이 가치를 위하여!” 이 다이아몬드의 크기는 농구공보다 약간 작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다이아몬드를 캐자고 사람들이 파헤친 땅은 반경 수 km, 깊이도 수백 m에 이르렀다. 채굴이 끝나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풀조차 자라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땅이었다.
다른 하나는 같은 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누군가 보내준 요즘 화제라는 한 시인의 어머니가 썼다는 편지였다. ‘배움이 없어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게 천만 배는 힘들다’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글은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유언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애달파하지 말라고 아들에게 내내 말하셨다. 자신의 삶이 생각보다는 행복했다며 깨꽃에 비유하셨다. 어머니는 깨꽃이 얼마나 예쁜지, 양파꽃은 얼마나 환했는지, 도라지꽃이 너무 예뻐서 일부러 넘치게 심었으며, 돌밭을 일구느라 힘들었어도 그 속에서 극락에 있는 듯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셨다.
우리는 어디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까? 다이아몬드가 반드시 사치의 상징일 수 없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산업 광물이기도 하지만 채굴조차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신부들의 손가락마다 끼워지는 걸 보면 분명 남아프리카의 그 엄청난 싱크홀에 우리의 몫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다이아몬드가 우리에게 진정 행복을 주는지, 시인의 어머니가 돌밭을 고르며 고단했지만 깨꽃, 감자꽃, 도라지꽃을 보며 느꼈던 그 행복이 진짜인지….
깨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양파도 꽃이 피고 감자꽃은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왕비가 자신의 모자 장식으로 즐겨 사용했을 만큼 고급스럽고 예쁘다. 쑥갓의 꽃은 웬만한 꽃도 울고 갈 정도로 눈부시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관상용 꽃보다도 먹을거리도 제공하면서 예쁜 볼거리도 주는 채소꽃을 많이 즐기셨다. 그 채소꽃의 절정이 바로 지금 5월 말부터의 일이다.
땅도 없고, 정원도 없어서라는 속 좁은 마음도 이젠 접어도 될 듯하다. 최근 도시인들을 위한 정원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몇 년 전부터 장바구니를 연상시키는 비닐백도 그중 하나다. 일명 ‘그로잉 백(growing bag)’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원예용 흙을 담아 식물을 키운다. 그로잉 백의 가장 큰 장점은 흙이 없는 보도블록 위나 타일 바닥에서도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줄기를 부풀려 영양소(이 부분이 우리가 먹는 감자)를 만들어내는 감자는 땅에 직접 심으려면 깊게 고랑을 파 둔덕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둔덕이 높아야 감자의 줄기가 잘 뻗어나갈 수 있고 이 줄기에서 감자가 매달린다. 하지만 그로잉 백을 이용하면 훨씬 더 쉽고 간단하다. 깊이가 깊은 그로잉 백 맨 아래 감자를 심고, 2주 간격으로 10cm씩 흙을 3, 4번 정도 보강해주면 줄기가 위로 뻗으면서 마치 아파트 개념으로 감자층이 생겨나 작은 그로잉 백 하나로도 수확량이 엄청나다.
여기에서 더 발전해 흙을 구하기 힘든 도시인들을 위한 원예상토 비닐백 자체를 텃밭정원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원예상토는 일반적으로 20L에서 50L까지 포장이 돼 나오는데 이 포장을 뜯지 않고 옆으로 누이고, 칼로 구멍을 내 여기에 호박 오이 박 등을 심거나 혹은 길쭉하고 가늘게 구멍을 내 상추 치커리 겨자 등의 잎채소를 심기도 한다. 원예상토는 식물을 키우기에 최적화된 유기물이어서 여기에 채소를 키우는 일은 식물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이고 빛이 들어오는 베란다만 있다면 누구라도 특별한 조건 없이 해볼 수 있는 초간편 텃밭정원인 셈이다. 물론 채소뿐만 아니라 뿌리가 깊지 않은 초본식물도 키울 수 있어 미니 꽃밭도 가능하다. 다만 식물을 심기 전 간단한 점검이 필요하다. 상토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지 확인하고 그렇다면 전체를 흔들어 공기가 충분히 들어가게 만들어주고 배수구멍 내는 것도 잊지 말자. 오이 호박 등의 덩굴채소라면 지지대도 꼭 필요하고 물을 줄 때는 흩뿌리듯 주기보다는 주전자 등을 이용해 뿌리 부분에만 정확하게 물을 공급해주는 것이 좋다.
먹는 재미만 있을까? 먹는 거야 순간이고 우리 곁에서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식물들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심었다는 어머니 마음을 누구라도 해보면 곧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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