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아내는 의사, 남편은 배 목수…‘시소 부부’로 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1일 14시 09분


‘시소 부부’ 김창혁 씨(왼쪽)와 이영이 씨. 사진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시소 부부’ 김창혁 씨(왼쪽)와 이영이 씨. 사진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이젠 당신 차례야.”

“그래, 이번엔 내가 올라가야지.”

김창혁(54) 이영이(51) 씨 부부는 최근 ‘임무’ 교대를 했다. 아내 영이 씨가 생계를 책임지고, 남편 창혁 씨는 회사를 관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신문사 기자로 맞벌이를 하던 둘은 2005년 영이 씨가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외벌이 커플이 됐다. 영이 씨는 10년간 의전 준비생-이화여대 의전 졸업-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올 3월 전문의가 됐다. 이번엔 창혁 씨가 배를 만드는 목수가 되기 위해 올 4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 부부처럼 한쪽이 ‘딴 짓’하는 동안 다른 쪽이 먹여 살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 밥벌이와 딴 짓하기를 교대하며 사는 커플을 ‘시소 부부’라고 한다. 둘은 따로 살았더라면 이루지 못했을 꿈을 시소 타듯 지혜롭게 균형을 이뤄가며 실현했다. 시소 부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시소부부로 살 수 있나요?”
①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하라

2005년 2월 부부가 의료 봉사팀을 따라 네팔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몸을 낮추어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는 의사들을 보며 영이 씨는 가슴이 뛰었다.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정의 실현 같은 거대담론을 고민하기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치료하고 그들이 나아지는 과정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고 싶었다.

“나, 의사 되고 싶어. 회사 그만두고.”

“해봐. 당신 공부 끝나면 나도 배 만드는 목수로 살 테니.”

영이 씨는 귀국하자마자 18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나이 마흔 하나에 의전 공부를 시작했다. 창혁 씨는 말했다. “‘썸데이’ 윌 네버 컴‘Someday’ will never come),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② 지금보다 가난해지는 걸 각오하라

벌이는 반으로 줄고 씀씀이는 커졌다. 의전의 연간 학비만 2천만 원이었다. 의전 입시 준비에도 상당한 돈이 들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영이 씨는 의전 첫 해 입시에서 떨어졌다. 사표를 냈으니 돌아갈 곳도 없었다. 창혁 씨는 “사수까진 봐주겠다”고 했는데, 다행히 이듬해 합격했다.

창혁 씨도 배를 만드는 목수가 되기 위해 5년간 선박학교에 다녔는데, 그곳 학기당 학비는 500만원이었다. 부부는 집을 줄였다.

“로망이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요. 나이 들어 하는 공부이니 성취의 속도도 젊을 때와는 다르죠. 가난해지는 것 각오해야 해요. 무직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야 하고요.”
③ 둘 다 뜬구름을 잡으면 안 된다

의사 공부는 길어도 끝이 있다. 면허증이 있으면 굶을 일은 없다. 반면 배를 만드는 목수는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막연하다. 창혁 씨가 회사를 그만 둔다고 했을 때도 시댁 식구들은 영이 씨에게 “네가 말려야 한다”고 했다.

“만약 둘이서 화가와 배우가 되기 위해 시소 타기를 했다면 불안했을 거예요. 화가로 배우로 성공하기는 어렵잖아요. 둘 중 하나는 결과가 확실한 꿈을 꾸어야지요. 그리고 부부가 같은 쪽을 바라보면 힘들어요. 그럼 저희처럼 시차 공격이 불가능할 겁니다.”

김창혁 씨. 사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창혁 씨. 사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④ 자아실현이 노는 핑계가 돼선 안된다

의사 공부를 하는 영이 씨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창혁 씨는 노후 걱정 없겠네. 셔터맨 하면 되니”였다.

영이 씨는 “하고싶은 일을 한답시고 놀고먹어선 안된다”고 못을 박았고, 창혁 씨는 회사를 그만두기 한참 전부터 배 목수로 살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했다. 2008년 강원도 원주에 있는 올리버 선박학교에 등록해 5년간 주말 보트 빌더로 살았다. 매주 토요일 아침에 가서 일요일 오후까지 공부한 시간이 모두 1만 시간은 된다.

2013년 5월엔 선주로서 발주해 학교 사람 3명과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꼬박 2년 매달린 끝에 9명이 탈 수 있는 22ft(6.7m) 길이의 레저용 케빈 크루저 ‘올리버 노바’를 완성했고,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동력수상레저면허와 배를 싣고 다닐 트레일러 면허도 땄다.

“남편이 배 목수가 되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황당했어요. 배에 관한 책을 쓰고, 배를 만들어 전시회를 하고, 그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겠다니, 정말 황당하잖아요. 이번 전시회를 보고 좀더 믿어줄 걸 하고 후회했죠.”

⑤ 기브 앤 테이크, 받았으면 갚아라

시소는 함께 타는 것. 내가 올라가면 다음엔 상대를 띄워줘야 한다. 아내가 오랜 수련 기간이 끝나고 전문의가 됐을 때 남편은 말했다. “나도 인턴, 레지던트 기간이 필요해. 5년을 줘. 그 후엔 내가 먹고사는 건 내가 해결하리다.”

아내도 동의했다. “내가 10년간 공부했으니, 이 사람에게도 4, 5년은 줘야죠. 10년 전 남편이 불안해했으면 저도 사고 못 쳤을 거예요. 회사 그만두고 의사 공부 하면서 힘들 때마다 징징거리면 남편이 다 받아줬는데, 이젠 내가 서포트 해야죠.”

창혁 씨는 당분간 헤밍웨이처럼 살 계획이다. 배타고, 배 짓고, 낚시하고, 글 쓰면서, 5년 후의 수익 모델을 찾을 생각이다. 먼저 올 가을 ‘심각한 취미’(나남)라는 책이 나온다. 배 만들기란 취미로 하기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심각한’ 취미란다.

⑥ 서로의 꿈을 반복적으로 얘기하라

꿈꾼다는 건 때론 피곤한 일이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가난도 감수해야 한다. 그럴 때 힘이 되는 건 그 꿈에 대해 자꾸 얘기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꿈의 대화는 따로따로인 계획을 부부생활에 맞게 조율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내는 봉사하는 삶을 꿈꾸죠.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을 하고 싶어했어요. 어느 날은 에티오피아로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난 ‘아프리카는 싫다’고 했죠. 너무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말라고 했어요.”

의사 일도 하고, 배도 탈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둘은 곳곳을 답사한 끝에 강원도 강릉에 정착했다. 강릉엔 아산병원이 있고, 올리버 선박학교 교육장이 들어선다. 개인병원이 아닌 아산병원이라면 공공 의료 성격을 갖추고 있어 병원이 아닌 환자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하는 영이 씨의 요구도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다.

⑦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라

둘의 시소타기는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남녀 모두 갱년기가 오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되죠. 인생 2막을 버벅대며 시작하지 않으려면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기자로서 입품, 글품으로 살았는데 앞으로는 일품으로 살아야지 했어요. 몸을 써서 사는 일. 마침 아내의 공부가 끝나고, 아들의 군 복무도 끝나 있었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돈은 최저 생계비 정도만 벌면 되죠. 의사는 그러기에 좋은 직업이에요. 의사인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부부는 멀지 않은 미래를 그려본다. 에메랄드 빛 바다의 항구엔 창혁 씨가 만든 배로 가득하다. 항구의 클럽하우스 옆엔 항해자들을 위한 클리닉이 있고, 그곳에 흰색 가운을 입은 영이 씨가 일한다.

언젠가는 부부가 병원선을 탈 것이다. 남편이 건조한 배에 아내의 진료용 도구를 싣고 외딴 섬을 돌며 배도 아픈 몸도 고쳐주면서 사는 그런 인생….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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