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라는 광고가 화제입니다.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7시간 동안 달리는 기차 창밖 풍경만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빠른 사회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일까요.
이 책을 보는 느낌이 그렇습니다. 화가라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다니. (목표 지향적인 학부모라면, 자기 아이들에게 안 보여 줄지도 모르겠군요.) 첫 장을 넘기면, 곰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오늘은 그림을 그리기 좋은 날이라는군요. 그런데 ‘찌익!’ 캔버스에 떨어지는 새똥. 직박구리가 배가 아프다네요. 곰 아저씨, 직박구리를 위해 약을 사러 갑니다. 약을 파는 염소를 위해 선반을 사러 가고요, 선반을 파는 족제비를 위해 아이를 돌봐주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선반을 달아주고, 약을 들고 직박구리를 찾지만 이미 떠나가 버린 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갑니다.
마지막 장, 다음 날 아침입니다. 곰 아저씨는 다시 캔버스를 펼칩니다. 어제는 앞산까지 그릴 수 있다 하더니, 오늘을 먼 산까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합니다. 어제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 같지만, 어제 만난 이웃들과 많은 그림을 그린 때문이죠.
반복되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친근한 동물 그림 때문에 편안합니다. 그 편안함 안에 무엇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의 축적이 ‘무엇’이 된다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잘 녹여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일까요? 그 사이에 내 곁을 스쳐간 바람, 내 머리 위에 흘러간 구름들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한다면서도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첫 장과 마지막 장에 같은 그림을 쓴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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