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시작된 눈보라가 점점 거세진다. 공연장은 하얗게 날리는 눈으로 가득 찬다. 무대 위에서 시작된 환상은 어느새 객석으로 넘어와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9년 만에 국내 무대를 찾은 러시아 마임극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몽환적 이미지로 가득한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공연 말미인 2막 마지막에 등장하는 눈보라 장면이다. 주인공인 광대가 헤어진 애인의 편지를 찢으면 그 조각들이 거대한 눈보라로 변한다. 무대는 물론이고 객석 전역에 눈보라가 몰아치며 슬픈 광대의 마음을 전한다.
눈보라 무대의 비결은 ‘할리우드 스노우’라는 습자지 재질의 눈 조각과 무대 중앙 뒤편에 마련된 항공기용 프로펠러 1대다.
‘스노우쇼’ 측 관계자는 “무대 천장 위쪽에서 종이를 뿌리면서 무대 뒤의 프로펠러를 작동하면 바람의 힘으로 종이가 바닥에 닿기 전 무대는 물론이고 객석 전역으로 날아가 마치 거대한 눈보라가 이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 내게 된다”고 했다. 눈 조각의 크기는 가로 1.5cm, 세로 3cm. 3주일간의 서울 공연 동안 1t 트럭 한 대를 가득 채울 분량의 ‘할리우드 스노우’가 사용된다.
1막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무대 위 광대들이 청소를 하던 중 천장에서 가로 18m, 세로 20m 크기의 거미줄이 떨어지는데, 이 거미줄은 무대를 지나 객석 1층 1열부터 마지막 19열까지 길게 늘어진다.
‘스노우쇼’ 측 관계자는 “거미줄이 떨어지면 관객들이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손을 뻗어 거미줄을 뒤로 넘긴다”며 “거미줄의 재료는 합성섬유 원자재의 일종으로 일회용이어서 한 번 사용한 후에는 폐기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커튼콜도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다. 광대 역의 배우들이 지름 4.5m의 대형 공과 수십 개의 커다란 풍선을 객석으로 던지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을 뻗어 공을 튕기면서 ‘함께 논다’. 무대에선 공을 객석으로 보내고, 객석에선 받은 공을 다시 무대로 보내며 배우와 관객은 함께 호흡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수동적인 관객에서 벗어나 공연의 일부가 되는 즐거운 체험을 하게 된다.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 LG아트센터. 4만∼8만 원.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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