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 씨(44)의 글을 연재한다. 김 씨는 싱가포르 요리학교 샤텍 유학 뒤 그곳 리츠칼턴호텔에서 일했다. 그전 14년간은 동아일보 기자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푸드카 ‘쏠트앤페퍼’를 운영 중이다. 》
수제 햄버거 푸드카 요리사의 일상은 뚜껑을 열어 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푸드카 안팎 청소를 마치면 그날 팔릴 것으로 예상하는 수량에 맞춰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우선 냉장고에 보관한 다진 고기를 꺼내 눈을 뭉치듯 공처럼 둥글게 빚은 뒤 이를 패티 프레스라고 부르는 도구로 눌러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납작하게 패티를 만든다. 넓은 초원에서 풀 뜯어 먹고 자란 호주산 쇠고기다.
인근의 식자재 마트에서 사 온 양상추는 한 장 한 장 뜯어서 씻은 뒤 물기를 제거하고, 토마토와 양파는 채칼로 가지런히 썰어 놓는다. 소스 병들, 고기 패티를 구울 뒤집개 같은 간단한 요리도구들도 사각의 철판 옆에 쓰기 편하게 정돈해 둔다. 또 뭐가 있을까. 참, 햄버거 패티를 넣을 빵이 있다. 냉동 상태로 받아 보관하는 빵을 실온에서 1시간 정도 해동하면 갓 구워 냈을 때처럼 촉촉해진다. 출근 한 시간도 안 돼 손님 맞을 준비가 모두 끝났다. 자, 햄버거 드실 분 어서어서 오시오.
그런데 손님 없이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흐르면 하루를 시작할 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다. 앞에 펼쳐진 것은 따가운 햇살이 쏘아 대는 나른한 초여름의 기나긴 오후뿐이다. 한강 상류의 자전거 도로 인근에 자리 잡은 음식점이나 상점 주인에게 평일 영업은 큰 의미가 없다. 모양도 색깔도 다채로운 갖가지 자전거를 탄 라이더들이 자전거 도로를 가득 메우고 끝없는 무리로 지나가는 것은 오로지 주말과 공휴일뿐이다. 주말과 평일의 풍경은 같은 곳일까 싶을 만큼 극단적이다. 이 한산하기 그지없는 평일의 시간들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책을 읽기도 하고 때로 요리 연습도 하고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데 요즘은 푸드카 옆 26m²(약 8평) 정도의 공간에 만들어 놓은 텃밭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텃밭 가꾸기에 취미를 붙이신 아버지가 4월 중순에 모종을 받아 토마토와 이탈리안 파슬리, 바질을 심어 놓았을 때만 해도, ‘쟤들이 저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남기는 할까’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웬걸, 대견하게도 지난번 한반도를 스쳐간 태풍도 너끈히 견디고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몸집을 키워 간다. 옮겨 심었을 때 고작 10cm도 안 됐던 토마토 모종은 2m 지주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한 달 만에 키가 60cm를 넘었다. 군데군데 노란 꽃도 피웠다. 한 달쯤 지나면 햄버거에 쓰기에도 충분할 열매가 달릴 것이다. 허브 종류인 바질도 잘 자라지만 파슬리는 벌레 하나 생기지 않고 더 없이 건강하다.
‘요리사란 참 멋있는 직업이구나’라고 느끼게 했던 인물을 떠올려 보니 공통점이 있다. 1990년대 말 TV 요리 프로그램 ‘네이키드 셰프’로 일약 스타로 부상한 영국 출신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그가 집 앞마당에서 기르는 허브를 따다가 즉석에서 파스타 같은 요리에 한 움큼 집어넣어 음식을 완성하는 프로그램의 패턴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방랑식객’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국민 요리사가 된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조차 못 했던 식재료들을 집 주변에서 찾아내 잡초로 자장면을 만들거나 이끼로 국물을 내고 심지어 오래된 아궁이의 흙까지 국물 내는 재료로 사용하는 장면들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시골 마을로 돌아간 젊은 도시 여자가 한 끼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을 그린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식재료를 시장에서 사지 않고 자연에서 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누구나 자연을 그대로 식탁 위로 옮겨 놓는 것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장면에 시청자의 감성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텃밭의 토마토 곁가지를 치고 있을 때 마침 중년 여성 한 분이 텃밭을 구경하다가 묻는다.
“이건 무슨 풀이에요?”
“아, 그건 이탈리안 파슬리라고 하는 허브예요. 제가 요리할 때 쓰는 겁니다.”
마지막 부분을 강조하며 얘기할 때 내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을 것이다. 물었던 그 사람도 느꼈을지 모르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