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찾아가는 사무실에서 새 식구를 맞이했다. 푸른 눈과 회색 털을 가진 러시안블루 고양이다. 종종 사무실에 들를 때면 용건도 잊은 채 고양이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장난감을 쫓으며 뒹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는 문득 ‘어라, 내가 고양이랑 놀러온 게 아닌데’ 하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환영하듯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고 들었다. 직접 눈을 맞추고 살을 비벼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두 번 놀아줬다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손을 핥으며 교감을 나눈다.
두 달 전 늦은 새벽에 귀가를 하게 됐다. 십 분에 한 사람 마주칠까, 인적이 드문 시간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 건물 앞 주차공간을 지나던 때였다. 옆으로 부스럭 비닐 뒤적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쓰레기 더미를 헤집으며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을 걸 찾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재빨리 자동차 밑으로 숨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몇 차례 지인의 사무실을 방문하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생긴 모양이다. 가방에서 푸딩을 꺼내 주차된 차와 담장 사이에 놓아주었다. “먹어, 먹어” 알아듣지 못할 말까지 남기고선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내 나름의 인심을 써 꺼내준 건데 너무 소박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야옹’ 소리를 내며 고양이가 계속해서 뒤를 쫓아왔다. 어설픈 직감을 발휘해 ‘뭔가 더 요구하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추측했을 뿐 정확한 해석은 불가했다. 햄을 잘게 잘라 깨끗한 물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내려왔다. 빵점짜리 직감은 아니었나 보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먹을 걸 내려놓자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집으로 들어와 마음이 뿌듯해졌다. 작은 친절을 베푼 제 모습에 스스로 도취돼 있기도 했으니 그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근데 고양이가 햄을 먹어도 되나?’ 몇 분 전 내 행동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쓰레기 속에서 별 걸 다 찾아 먹었을 텐데 뭐 어때’ 싶으면서도 ‘그래도 그게 아니지’ 좀 더 확실히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인터넷 창에 고양이와 관련된 검색어를 입력해봤다. 반려묘뿐만 아니라 길고양이에 관한 정보 또한 적지 않았다. 거리의 고양이가 이제는 요물이 아닌 공생해야 할 존재로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이 역시 생명임을 망각한 자들의 학대는 얼마나 잔혹한 뉴스였는지 모른다.
조사한 내용을 취합한 결과 햄과 같이 짠 음식은 땀으로 염분 배출이 힘든 고양이에게 좋지 않다고 한다. 염도 높은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는 길고양이는 쉽게 깨끗한 물을 마실 수도 없어 수명이 3년밖에 되지 않는단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몇 차례 먹이를 챙겨 주었다. 야생성을 잃을 수 있으니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사람이라면 간헐적으로 먹이를 놓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서 사료와 캔을 구비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보다는 평소 식사량을 줄여 일주일에 두세 번 남은 음식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양념을 씻긴 멸치와 닭고기 등이 메뉴였다.
얼마 전 먹이를 놓던 자리에 쥐 한 마리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윽’ 하던 것도 잠시 고양이가 쥐를 물어다 놓는 건 감사의 표시라 들었던 게 생각났다. ‘혹시 나 보라고 놓아둔 건가?’ 아닐지도 모르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뿔싸, 그 여운에 덥석 사료를 한 봉지 계산하고 말았으니 녀석의 작전이라면 성공이다.
근데 마음이 좀 이상하다. 느닷없이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근 고양이에게 들인 관심만큼 가족을 향해 쏟아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니 먹이 챙기는 일이 왠지 엉뚱하게 느껴질 정도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또 그들의 지금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금세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다.
우리는 종종 안테나를 높이 세워 오로지 먼 곳을 향해 전파를 방사하게 된다. 가까운 곳은 애써 노력할 필요 없다는 듯 말이다. 고된 일상에 지쳐 주위를 살필 여력이 남지 않게 되면 습관처럼 자신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근방부터 소홀히 하게 된다. 그사이 눈앞의 많은 외로움은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쌓여만 가지 않았을까. 어쩐지 무신경해지고 마는 고마움들을 향해 안테나를 낮춰야겠다. 쥐를 물어다 놓는 고양이처럼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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