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고양이 먹이를 챙기다 문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03시 00분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가끔씩 찾아가는 사무실에서 새 식구를 맞이했다. 푸른 눈과 회색 털을 가진 러시안블루 고양이다. 종종 사무실에 들를 때면 용건도 잊은 채 고양이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장난감을 쫓으며 뒹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는 문득 ‘어라, 내가 고양이랑 놀러온 게 아닌데’ 하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환영하듯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고 들었다. 직접 눈을 맞추고 살을 비벼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두 번 놀아줬다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손을 핥으며 교감을 나눈다.

두 달 전 늦은 새벽에 귀가를 하게 됐다. 십 분에 한 사람 마주칠까, 인적이 드문 시간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 건물 앞 주차공간을 지나던 때였다. 옆으로 부스럭 비닐 뒤적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쓰레기 더미를 헤집으며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을 걸 찾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재빨리 자동차 밑으로 숨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몇 차례 지인의 사무실을 방문하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생긴 모양이다. 가방에서 푸딩을 꺼내 주차된 차와 담장 사이에 놓아주었다. “먹어, 먹어” 알아듣지 못할 말까지 남기고선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내 나름의 인심을 써 꺼내준 건데 너무 소박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야옹’ 소리를 내며 고양이가 계속해서 뒤를 쫓아왔다. 어설픈 직감을 발휘해 ‘뭔가 더 요구하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추측했을 뿐 정확한 해석은 불가했다. 햄을 잘게 잘라 깨끗한 물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내려왔다. 빵점짜리 직감은 아니었나 보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먹을 걸 내려놓자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집으로 들어와 마음이 뿌듯해졌다. 작은 친절을 베푼 제 모습에 스스로 도취돼 있기도 했으니 그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근데 고양이가 햄을 먹어도 되나?’ 몇 분 전 내 행동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쓰레기 속에서 별 걸 다 찾아 먹었을 텐데 뭐 어때’ 싶으면서도 ‘그래도 그게 아니지’ 좀 더 확실히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인터넷 창에 고양이와 관련된 검색어를 입력해봤다. 반려묘뿐만 아니라 길고양이에 관한 정보 또한 적지 않았다. 거리의 고양이가 이제는 요물이 아닌 공생해야 할 존재로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이 역시 생명임을 망각한 자들의 학대는 얼마나 잔혹한 뉴스였는지 모른다.

조사한 내용을 취합한 결과 햄과 같이 짠 음식은 땀으로 염분 배출이 힘든 고양이에게 좋지 않다고 한다. 염도 높은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는 길고양이는 쉽게 깨끗한 물을 마실 수도 없어 수명이 3년밖에 되지 않는단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몇 차례 먹이를 챙겨 주었다. 야생성을 잃을 수 있으니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사람이라면 간헐적으로 먹이를 놓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서 사료와 캔을 구비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보다는 평소 식사량을 줄여 일주일에 두세 번 남은 음식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양념을 씻긴 멸치와 닭고기 등이 메뉴였다.

얼마 전 먹이를 놓던 자리에 쥐 한 마리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윽’ 하던 것도 잠시 고양이가 쥐를 물어다 놓는 건 감사의 표시라 들었던 게 생각났다. ‘혹시 나 보라고 놓아둔 건가?’ 아닐지도 모르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뿔싸, 그 여운에 덥석 사료를 한 봉지 계산하고 말았으니 녀석의 작전이라면 성공이다.

근데 마음이 좀 이상하다. 느닷없이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근 고양이에게 들인 관심만큼 가족을 향해 쏟아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니 먹이 챙기는 일이 왠지 엉뚱하게 느껴질 정도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또 그들의 지금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금세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다.

우리는 종종 안테나를 높이 세워 오로지 먼 곳을 향해 전파를 방사하게 된다. 가까운 곳은 애써 노력할 필요 없다는 듯 말이다. 고된 일상에 지쳐 주위를 살필 여력이 남지 않게 되면 습관처럼 자신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근방부터 소홀히 하게 된다. 그사이 눈앞의 많은 외로움은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쌓여만 가지 않았을까. 어쩐지 무신경해지고 마는 고마움들을 향해 안테나를 낮춰야겠다. 쥐를 물어다 놓는 고양이처럼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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