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3학년 10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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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3학년 10반이었던 친구들이 모였다.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다니러 왔다고 하여 담임선생님까지 모셨다. 여고 졸업 이후 첫 만남인 친구가 말했다.

“어머, 넌 어쩜 고등학교 때랑 똑같니.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도 알아보겠다.”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솜털 보송하던 여고시절과 똑같다니, 젊었을 적에 50대 아줌마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 옆에서 들으며 어이없어했는데 지금 우리가 그러고 있었다.

“얘들아, 난 딸하고 한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포기했어.”

한 친구가 딸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외국에서 사는 딸이 가끔 엄마가 해준 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하기에 김치를 담그려고 양념을 갖추어서 딸에게 갔다고 한다. 그런데 딸은 자기가 직접 하겠다면서 배추를 절이는데 소금은 얼마나 넣어야 하냐고 물었다. 평소대로 소금을 한 움큼 집어서 뿌렸더니 딸이 질색을 했다.

“엄마, 소금을 손으로 집으면 어떡해요. 몇 그램 넣으면 되냐고요!”

그렇게 시작된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배추는 몇 시간 절여야 하죠? 고춧가루는 몇 그램? 이것은 몇 스푼? 그렇게 질문공세를 해대는 딸에게 명확하게 수치를 밝히지 못하고 어물거리다 보니 갑자기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들면서 정나미가 확 떨어지더라는 것.

전에 어떤 분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며느리가 하도 숫자를 들이대서 속이 뒤틀리던 차에 또 “어머니, 대파는 몇 센티로 썰까요?”라고 묻기에 “18센티로 썰어라. 18”이라고 답했다는 것.

3학년 10반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인생은 사이클임을 실감했다. 어느새 우린 엄마랑 했던 실랑이를 딸하고 벌이고 있었다. 우리가 엄마의 딸이었을 적에 도무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구식 엄마라고 타박했었다. 지금 딸에서 엄마로 우리의 역할은 바뀌었지만 실랑이의 내용은 그다지 변함이 없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는 거였다.

10년 후 우린 할머니가 되어 다시 만나도 같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어머, 넌 어쩌면 그렇게 여고시절과 똑같니.”

옆에 앉은 젊은 사람들이 들을까 봐 민망하겠지만 이런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듯 할머니가 되어도 한번 3학년 10반은 영원히 3학년 10반이니까.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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