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신시아 인로 지음/김엘리 오미영 옮김/328쪽·1만5000원·바다출판사
‘진짜 사나이’라는 신화가 있다. 비슷한 이름의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여자 연예인은 병영 체험을 버거워하는, 조금 씩씩하지만 귀여운 이미지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군복을 접어 입은 모습으로 동네 편의점마다 얼굴을 비춘다. 뉴스 속에서는 군내 성희롱·성폭행 문제의 빙산이 갈수록 수면 아래를 드러낸다. 군사문화는 입었지만 너무 편안해 느껴지지 않는 속옷처럼 우릴 둘러싸고 있다.
책은 군사화의 지구화가 특정 유형의 남성성을 특권화하는 동시에 여성을 제멋대로 선취하고 여성성을 경시해 민주적 삶을 전 세계적으로 파멸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드는 섬뜩한 예 중 하나는 1960, 70년대 나이키가 한국에 공장을 세운 이유다. 미국 자본의 의도적인 구애에 대해 한국 군사정권은 공장에서 바느질을 통해 산업화에 이바지하는 순종적인 딸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이후, 군사정권이 주는 이익에 익숙해 있던 나이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한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기며 이때 상당수의 한국 남성 하청업자가 자카르타로 함께 옮겨갔다는 것이다.
저자는 군사화의 지구화에 댈 메스로 ‘페미니스트 호기심’을 독자들에게 건넨다. 2006년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 군 심문관들의 포로 학대 문제가 그렇다. 남성 포로를 발가벗긴 채 카메라를 보고 웃는 미군의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된 것이다. 저자는 이들이 포로들을 이렇게 ‘여성화’한 까닭은 고착화된 성 역할에 길든 미국 비전투 업무 담당자들이 포로들의 지위를 더 낮추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한다.
동어 반복의 피로감이 적지 않지만 이 책에는 밀리터리룩, 외국산 운동화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을 보는 관점을 바꿀 만한 예리한 통찰 역시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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