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禮와 樂으로 보는 명사들의 풍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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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 그 형이상학적 유혹/한지훈 지음/332쪽·1만5000원·소나무

“여악(女樂)을 고치지 않고 잘못된 풍습을 그대로 따른다면 뒷날에도 ‘옛날 성대(盛代)에도 혁파하지 못한 것을 어찌 오늘에 이르러 갑자기 혁파하랴’라고 할 것입니다.”

세종 12년(1430년) 김종서가 세종에게 올린 충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세종 이후 조선의 왕들은 김종서의 예언과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하며 신하들의 여악 혁파 주장을 거부했다.

여악은 요즘으로 치면 걸그룹이다. 춤과 노래, 악기 연주 실력이 출중한 젊은 여인들로 구성돼 왕실과 지방관가 소속으로 연회에서 공연을 했다. 고려 8대 왕인 현종 즉위년(1009년)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언관들은 여악의 폐지를 계속 주장했지만 중국 사신 접대의 필요성 때문에 조선 왕조 내내 존속한다.

저자는 동아시아 풍류 정신의 원조로 공자를 꼽는다. 공자가 가르친 도(道)의 구체적 내용은 육예(六藝)인데, 그중에서도 예(禮)와 악(樂)을 가장 중시했다. 예와 악은 역할과 기능이 달라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보완적 관계다. 예는 악을 동반하고, 악 없는 예는 상상할 수 없다.

공자가 악을 즐긴 흔적은 논어 곳곳에서 발견된다. 공자는 제(齊)나라에 머물 때 소(韶)라는 음악에 도취해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공자는 “악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자가 편찬한 시경 중에도 불륜을 소재로 한 민요가 30여 편이나 된다.

동양철학, 미학 등을 강의하는 인문학자인 저자가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다듬어 엮었다. 도연명 왕희지 최치원 이규보를 비롯한 중국과 한국사 속 명사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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