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21>36년째! 아직도 진행 중인 미술작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거대 자본은 미술 작품의 규모를 키우고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관람자의 완전한 몰입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적 미술작업의 프런티어는 거대한 건축 설치가 이끌며 그 시각적 스펙터클은 압도적이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1977년 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있는 지름 3.2km의 로든 분화구를 사들여 유례없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디아아트 재단과 함께 1979년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이다. 터렐은 지금까지 분화구 안에 약 15개의 방과 그 방들을 잇는 터널을 만들었다. 화산 내부에서는 천체의 궤도를 볼 수 있고, 해와 달의 움직임에 따른 빛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대략 20개의 공간 설치작품이 포함되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언젠가’ 완성될 예정이다.

그중 분화구의 눈(Crater‘s Eye)에 설치한 작품(2001년·그림)은 그의 전형적인 하늘 작업이다. 색조를 띤 조명이 연출하는 경건한 분위기에서 관람자들은 마치 천장화를 보듯, 뻥 뚫린 천장 속 하늘을 올려다보며 숭고한 장면에 압도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은 그 자체가 놀라운 추상화이고 원형구조는 그 프레임이 된다.

빛과 공간의 설치작가 터렐은 공간 속에서 빛을 지각하는 방식을 연구해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사람들이 균일한 색면을 응시할 때 갖는 착시현상에 착안하여 공간과 빛에 대한 감각을 시각화한다. 그의 작업에서 관람자들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 작품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는 항공엔지니어였던 부친에게 영향을 받아 일찍이 비행기 조종을 배웠다. 경비행기를 타면서 경험한 다양한 감각은 공간과 빛에 대한 남다른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빛이 물질이 되고 공간을 만든다”는 작가의 말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또한 퀘이커교의 가정환경은 내면의 성찰을 강조하는 근거가 돼 주었다.

터렐은 현재 72세이고 프로젝트는 올해로 36년째다. 로든 분화구 프로젝트는 작가의 삶과 함께하는 일생일대의 야심작이다. 화산의 분화구를 통째로 작품으로 만들기에 인생은 너무 짧은 것인지 모른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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