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이윤(伊尹)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천한 노비 출신인데 은(殷)나라 탕왕(湯王)에게 발탁돼 재상에 올랐으며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토벌하고 은나라가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는 분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탕왕은 이윤을 초빙하고서는, 이윤이 오자 그를 폭군인 걸왕에게 추천했다는군요. 좋은 사람 기껏 불러서 자기는 안 쓰고 남에게 보낸다? 얼핏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이윤 덕에 걸왕이 개과천선해서 정치를 잘하기를 바라서 그렇게 했다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문제는 걸왕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래서 이윤은 걸왕을 떠나 탕왕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것이 모두 다섯 번이었다는군요.
조선 전기의 유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이 이에 대해 ‘이윤이 다섯 번 탕에게 간 것에 대한 논(伊尹五就湯論)’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윤은 천하를 한집안같이 생각하여 반드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탕과 걸 사이를 오가면서도 지루하다거나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공자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해서 꼭 하겠다고 규정하는 것도 없고 꼭 하지 않겠다고 규정하는 것도 없이 의를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라고 하였다.
어떻게든 백성을 살려보겠다고 자신을 굽혀 가며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한 사람은 이윤이요, 올바른 도(道)가 실현되면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질 테니 나는 꼭 어떻게 하겠다고 고집하지 않겠다, 거취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도를 지키는 것을 으뜸으로 삼겠다고 한 사람은 공자이니 공자가 한 차원 높다는 말씀인 듯합니다.
그렇지만 후세 사람들은 이윤에 대해서도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뜻을 가져, 한 지아비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하면 자신이 도랑으로 밀어 넣은 것처럼 수치스러워하였다(有志於堯舜君民, 一夫不被其澤, 有納溝之恥)”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답니다. 이 평가를 놓고 보면 이윤도 참 대단한 분 같습니다. ‘온 천하의 백성이 잘 살지 못하는 게 나의 가장 큰 부끄러움’이라는 자세, 모름지기 ‘진짜’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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