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 판치는 ‘유령시’와 ‘엉터리시’ 때문에 시인들이 고통 받고 있다. 시인이 쓰지 않은 유령시가 시인의 이름을 훔쳐 진짜 행세를 하고, 원래 시와는 다른 오타 투성이 엉터리시가 온라인에 떠돈다.》
‘당신들에게 난 지금 말해야겠다/사랑의 크기를 시험하는 당신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사랑하지 말거라/당신들은 흉터만 남길 뿐이다/그리고 사랑에 힘겨워 울고 웃는 자들이여/그렇게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라는 제목의 시 일부다. 작자는 ‘정호승’으로 표기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호승 시인의 시가 아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정 시인의 시 ‘그리운 부석사’의 시구다. ‘그리운 부석사’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로 시작한다. 인터넷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정호승 시인과 아무 상관없는, 작자 미상 정체불명의 시다.
정 시인의 이름을 훔친 시는 한두 편이 아니다. ‘바람이고 싶어라/그저 지나 가 버리는’이란 구절로 시작되는 ‘바람이여’란 시도 작자가 정호승 시인으로 돼 있지만 실은 유령시다. 정 시인은 “‘이 시는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란 댓글을 인터넷 게시글에 달지만 시를 삭제해주는 사람이 없다”며 “이런 가짜 시에 ‘정 시인이 사랑을 수없이 운운하는 유치한 시를 쓴다’며 비평까지 달리니 무척 속상하다”고 밝혔다.
온라인의 유령시는 오프라인까지 옮겨왔다. 몇 해 전 정 시인이 한 대학에 강연을 갔을 때다. 문예창작과 학생이 시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정 시인의 시를 낭독했는데, 그때 학생이 고른 시가 유령시 ‘사랑하다 죽어버려라’였다. 한 수도권 대학신문사는 정 시인을 인터뷰하고선 유령시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전문을 신문에 싣기도 했다.
시를 인터넷에 올릴 때 잘못 옮겨 엉터리시를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오세영 시인은 시 ‘산다는 것은’에서 ‘산다는 것은/가슴에 새 한 마리 기르는 일일지도/모른다’라고 썼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새’를 ‘개’로 잘못 옮긴 시가 퍼져나갔다. 오 시인의 다른 시 ‘봄’에선 ‘피곤에 지친 청춘이/낮잠을 든 사이에 온다’란 구절이 있는데 인터넷에선 ‘피곤에 지친 춘향이’로 바뀌기도 했다. 오 시인은 “새와 개가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자판의 ‘ㅅ’ 옆에 ‘ㄱ’이 있다 보니 생긴 일 같다”며 씁쓸해했다.
한 번 올려진 정보가 무한 복제돼 빠르게 퍼지는 인터넷 특성상 유령시 엉터리시를 바로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해인 수녀의 팬들은 팬카페에 이 수녀가 쓰지 않은 시를 발견할 때마다 제목을 정리해두고 삭제를 요청하고 있다. 이렇게 찾은 유령시들이 30편이 넘는다. 이 수녀는 “아무 말이나 짜깁기해서 내 이름을 적고 있는데, 출처 확인이 안 된 시들은 돌리지 말아야 한다. 정작 제 시들은 책 속에서 울고 있다”고 했다.
한 출판사 문학 편집자는 “시를 무단 복제해서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는 일은 불법인데, 누리꾼들이 불법을 저지를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엉터리로 잘못 올리고 있다”며 “시를 올린 누리꾼에게 항의하면 ‘시를 홍보해주는데 왜 그러느냐’며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니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서희원 문학평론가는 “인터넷에 퍼져가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조금씩 변하는 구전의 특성을 가진다”며 “시를 정확하게 읽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인쇄된 원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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