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서세동점?… 모르는 소리! 서양 근대화, 공자가 이끌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6일 03시 00분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황태연 김종록 지음/350쪽·1만4800원·김영사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아래 왼쪽 사진)와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아래 오른쪽 사진). 서구 계몽주의를 이끈 거학인 이들은 모두 공자(위 사진)의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김영사 제공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아래 왼쪽 사진)와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아래 오른쪽 사진). 서구 계몽주의를 이끈 거학인 이들은 모두 공자(위 사진)의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이 저자의 주장이다. 김영사 제공
‘공자의 철학이 서구 계몽주의와 근대화를 낳았다.’

누군가 이런 주장을 내놓는다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반응부터 터져 나올 것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구도에 익숙한 일반인들에게 르네상스 이후 동서양의 사상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린 별개의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구 근대화에 대한 상식을 뒤엎고 색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치, 문화, 사상, 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자로 대표되는 중국 문명이 유럽 근대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문명이 크게 두 시기에 걸쳐 유럽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다고 본다. 우선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14∼16세기 유럽 르네상스기에 중국의 물질문명이 집중적으로 수입됐다. 대항해 시대를 가능케 한 나침반과 화약은 물론이고 근대 지식체계를 낳은 금속활자 등이 대표적이다.

물질적 풍요에 뒤이어 사상이나 문화에 대한 수요가 커지듯 공자의 사상이 유럽 식자층에 깊숙이 침투해 18세기 서구 계몽주의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두고 호주의 정치학자 존 아서 패스모어는 “17, 18세기 유럽 사상계의 변화는 유럽 철학의 공자화”라고 규정했다.

독일 계몽주의 철학의 거두 크리스티안 볼프의 시련이 가장 극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신학, 철학, 수학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볼프는 1721년 독일 할레대에서 공자를 찬양하는 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나 17년간 고국을 떠나 있어야만 했다. 볼프는 문제의 강연에서 “공자는 덕과 학식이 뛰어났고 신의 섭리에 의해 중국에 선물된 사람이었다. 철학자들이 다스리는 곳에서 국민이 행복한 것은 당연하다. 중국의 오제(五帝)는 플라톤이 말한 이상적인 철인 정치가들이다”라고 주장했다.

미·적분학을 창시한 천재 수학자 라이프니츠도 과학기술을 제외한 정치와 도덕 분야 등에서 중국이 우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책은 철학뿐 아니라 유럽의 자본주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경제학마저도 공자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적 스승인 프랑스 중농주의 경제학자 프랑수아 케네 역시 공맹(孔孟)의 농본주의와 무위이치(無爲而治·성인의 덕을 통해 백성에 대한 간섭 없이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경지)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가 의도치 않게 공공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역시 공자의 무위이성(無爲而成)과 같은 개념이라고 설파한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를 비양심적인 표절학자로 몰아붙인다. 동시대 스승인 케네는 물론이고 공자의 사상을 분명 참고했음에도 이에 대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겁 많은 애덤 스미스가 이교도인 공맹과 사마천을 경제철학의 가장 결정적인 출처로 밝힌다는 것은 자신의 독창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여겼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최고의 사상체계를 가졌다는 동아시아 문명이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중국이나 조선 모두 자신의 문명에 심취해 다른 문명을 수용하지 않은 ‘오만’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다. 본토인 중국 이상으로 공맹을 극진히 섬긴 조선에서 그토록 강조한 겸손의 예(禮)가 어느 순간, 어떻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인가.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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