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다니엘 튜더 지음·송정화 옮김/232쪽·1만4800원·문학동네
‘익숙한 절망… ’을 쓴 다니엘 튜더 씨
“한국에서 막 불거진 문제들이 영국에서는 곪아터진 문제예요. 그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3일 인터뷰한 영국인 다니엘 튜더 씨(33)는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옥스퍼드대 학생이던 튜더 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에 놀러왔다가 한국 응원문화에 푹 빠졌다. 2003년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영어강사, 증권사 직원으로 일했다. 2007년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후 2010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으로 부임해 3년간 한국 사회를 취재했다. 전작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가 급성장한 한국의 명과 암을 짚었다면 이 책은 한국 정치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느낀 점을 담은 정치비평서다.
그는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를 꼽았다.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는 다이어트 콜라가 실제론 다이어트 효과가 없듯 정치권이 인기에 영합해 안목 없는 공약을 남발하는 행태를 뜻한다. “국회의원 홈페이지를 보면 작업복을 입고 노동자와 어울리며 민생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제가 만나본 정치인들은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에 열을 올렸어요. 정치인은 ‘희망’ ‘소통’ ‘미래’ 같은, 자신들이 내놓은 슬로건을 지키지 않고 있고 사람들은 정치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보수, 진보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불평등을 줄이고 약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선 때 취재해보니 야당은 정부와 여당 비판에만 몰두하며 인상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더군요. 보수는 가족, 사회, 전통적 가치와 자유시장 경제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여당은 권력을 오래 유지하면서 선거에서 이기려고만 하는 기계같이 보입니다.”
그는 ‘대기업 우선주의’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고 봤다. “대기업이 거의 모든 분야를 장악한 탓에 새로운 사업기획이 생겨도 금세 대기업 차지가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자유시장이 아니죠.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 개입 최소화를 주장해요. 한국 대기업은 정부로부터 받은 독과점 혜택을 누려왔고 전기사용료 등 보조금을 받으며 성장했죠. 그런데 ‘사회에 기여하라’고 요구하면 사회주의를 운운하며 불평합니다.”
그는 이 같은 환경 때문에 “한국인이 절망에 익숙해지고 (오지 않을) 희망에 불편해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안으로 “목소리를 내자”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가 이뤄지는 온·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돼 사회구성원 간에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활동이 선거, 국가의 주요 이슈에 영향을 미쳐야 하고요. 구세주는 필요치 않아요. 스스로 목소리를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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