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칼은 내 머리칼 속에. 그녀는 내 손의 모양을 가졌다, 그녀는 내 눈의 빛깔을 가졌다, 그녀는 내 그림자 속에 삼켜진다. 마치 하늘에 던져진 돌처럼.
그녀는 눈을 언제나 뜨고 있어 나를 잠자지 못하게 한다. 훤한 대낮에 그녀의 꿈은 태양을 증발시키고 나를 웃기고, 울리고 웃기고, 별 할 말이 없는데도 말하게 한다.
엘뤼아르의 이 유명한 시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뛰어난 연애시들은 흔히 죽음을 암시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늘 한 점 없이 화창하다. 화자와 ‘그녀’ 사이의 사랑이 생생히 느껴지는 이 투명한 시적 진술! ‘그녀’와 화자는 같은 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다. ‘그녀는 눈을 언제나 뜨고 있어/나를 잠자지 못하게 한’단다. ‘훤한 대낮에 그녀의 꿈은/태양을 증발시키고/나를 웃기고, 울리고 웃기고,/별 할 말이 없는데도 말하게 한다’에 이르러 독자는 사랑으로 격하게 동요하는 화자의 영혼에 공명하며 뭉클, 울컥해진다. 연대의 시이자 사랑의 시이자 합일의 시 ‘연인’, 이 온전한 사랑의 시 속의 ‘그녀’는 엘뤼아르의 부인이었는데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더 좋아져서 ‘달리 부인’이 된 갈라일까. 어쩌면 이 시 화자의 느낌이 일방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연인’은 연애시사(戀愛詩史)의 한 정점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대표적 초현실주의 시인 엘뤼아르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결기 있는 정치시인이기도 했다. 한국 독자에게도 널리 알려진 ‘통금’이나 ‘자유’ 같은 시를 보면, 그는 서정주나 황동규의 선배가 아니라 김남주의 선배다. 엘뤼아르의 ‘통금’이나 ‘자유’에서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나 ‘학살’을 떠올리지 않기는 쉽지 않다. 공산주의자로 살았고 공산주의자로 죽은 엘뤼아르는, 김남주처럼, 저항과 혁명의 시인이었으며 자신의 문학 속에서 사랑과 혁명을 통일하기를 꿈꿨다. 그렇다면 ‘눈을 언제나 뜨고 있어/나를 잠자지 못하게’ 하는 ‘그녀’를 그의 현실 참여적 의식의 근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만, 그러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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