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시간의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라는 말은 이제 구시대의 통념일 뿐이다. 예컨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사량도 공연은 통영 바다라는 물리적 공간을 예술적 감동의 장소로 기억 속에 각인시킨다. 반면 오늘날의 설치미술, 특히 공공미술은 스펙터클한 공연처럼 단기간 연출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적 제한은 그 장소에서 갖는 유일무이한 체험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
10년 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는 일시적인 대 장관이 연출되었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Christo & Jeanne-Claude)의 ‘문(The Gates·1979∼2005년·그림)’은 센트럴파크 안의 통행로에 7500개의 오렌지색 패널을 설치한 작품이다. 센트럴파크 내에 설치됐는데 작업의 총 길이가 37k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작품의 재료로 5390t의 강철, 96km의 비닐 배관, 그리고 9만9155m²의 천이 사용됐다.
각각의 ‘문’은 오렌지색 나일론 천으로 이루어진 패널이다. 머리 위에 설치된 패널의 높이는 5m이고 너비는 대략 3m에 3.65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설치되었다. 공원 속 행로를 따라 박은 수천 개의 오렌지 패널은 빛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며, 바람의 세기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천은 생동감 넘치는 장관을 연출한다. 공원 주위의 건물에서 바라보면 지형을 따라 나뭇가지들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금빛 강물 같았다.
작업은 2005년 2월, 15일 동안 설치되었다. 하지만, 전체 작업기간은 그보다 훨씬 길다. 1979년에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계획해서, 뉴욕 시의 허가를 받는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마침내 2005년 설치까지 꼬박 26년이 걸렸다. 현대미술은 보이는 결과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과정도 작업으로 간주한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부부는 언제나 그렇듯, 전시를 위한 어떤 기부나 스폰서도 받지 않았고, 전시 기간 동안 입장료도 없었다. 이들은 여러 작품을 팔아 작업 설치의 재정을 부담했다. 사용된 재료는 전시 후 모두 재활용했고, 작품의 조립과 설치, 그리고 유지와 제거를 위해 뉴욕 시민들을 고용해 경제적인 효과도 창출했다. 설치할 때 동원된 인원만 해도 600여 명이었다.
‘문’은 소유보다 향유가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준다. 이는 사적 소유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공공미술의 역할이자 메시지이다. 시간의 한계를 아는 것은 ‘지금, 여기서’ 느끼는 미적 체험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삶의 가치를 깨닫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