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주도를 찾은 사람은 무려 1227만4000명. 이 중엔 외국인도 332만8000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 중에 사시사철 푸른 이 곶자왈 숲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이끼가 탐스럽게 낀 바닥의 돌을 딛고 그 청징한 공기를 들이켜며 산책해 본 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곶자왈이란 게 제주도민조차도 잘 모르는 숨은 보물이어서다. 그렇다 보니 이게 알려지길 꺼려하는 이들도 많다. 기자도 그중 하나고.
곶자왈은 산골서 태어나 한번도 그 산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처녀처럼 청순하기 그지없는 자연. 그러니 알려지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어서다. 그럼에도 이걸 알리는 이유. 더 잘 보전하고 싶어서다. 생태관광이란 이런 완벽한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그걸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진정한 목표다.
제주도의 숨겨진 보물 곶자왈
내가 곶자왈이라는 이 특별한 숲에 처음 발을 들인 건 5년 전. 거문오름(제주시 조천읍)에서다. 그 숲은 오름 아래 중산간을 뒤덮은 원시림. 한여름 땡볕을 단 한줌도 허용치 않을 만큼 울창한 밀림인데 한라산과는 전혀 달랐다. 이 숲의 나무가 뿌리를 내린 대지가 흙 대신 크고 작은 화산 돌로 아무렇게나 얼키설키 쌓여 이룬 돌밭이어서다. 그리고 그 돌은 이끼같이 바위표면에 붙어 자라는 착생식물로 덮여 있다. 이런 걸 제주도에선 ‘곶자왈’이라고 했다. 화산폭발 때 날아온 크고 작은 돌로만 이뤄진 대지인데 뭍에선 언감생심의 제주고유 숲 풍광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곶자왈은 잘 몰라도 곶자왈과 실제는 아주 친근한 사이다. 제주산 생수 ‘삼다수’가 곶자왈의 대표적인 산물이어서다. 돌무더기의 곶자왈에서 빗물은 성긴 돌 틈으로 흘러드는데 이게 풍부한 제주도 물의 원천이다. 물뿐일까. 한라산과 해안평지의 경계를 자처한 곶자왈은 식물과 동물, 사람 모두에게 소통의 공간이다. 사실 이곳은 불모지다.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다. 그래서 버려졌는데 그게 동물에게는 요람이 됐다. 큰바람과 비, 눈을 피해 새들과 노루, 오소리가 여기 모여든다.
곶자왈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이다. 곶자왈은 일년 내내 푸르다. 지하에 고인 물에서 피어오른 습기, 그 물로 인해 유지되는 일정한 온도 때문이다. 그래서 남방식물과 북방식물이 한데 자라는 아주 특별한 식물상이 펼쳐진다. 올 7월 개장하는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
하지만 이런 곶자왈이 제주도에 흔한 건 아니다. 단 네 곳뿐이다. 최근 나는 그중 제주도 서남쪽의 ‘구좌-성산 곶자왈’을 찾았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이사장 김한욱)가 57억 원을 들여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을 조성(기부채납)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서다. 이 숲엔 이미 3년 전 탐방로가 설치됐다. 올해는 거기에 이 숲을 공중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생태전망대와 이 숲의 가치를 알리는 탐방센터를 설치 중인데 곧 개장(7월 말)한다.
그 탐방로를 따라 도립공원 곶자왈 숲을 걸었다. 이 숲은 천국의 형상을 하고 있다. 거문오름 곶자왈 숲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하다. 숲 그늘은 어찌나 짙은 지 옷을 벗어 짜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싶다. 새들도 거문오름보다 훨씬 많은 듯했다. 그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어찌나 청아한 지 한참을 바위에 앉아 감상했다.
하지만 숲의 나이는 60년에 불과하다. 6·25전쟁 직후 땔감을 위한 남벌로 훼손된 탓이다. 지금 것은 거기서 자연스레 형성된 2차림이다. 그런데도 식물상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고 수려하다. 걷다보면 집터도 만나고 말과 소를 가둬 키우느라 쌓았던 돌담도 본다. 바위를 온통 초록으로 물들인 다양한 착생식물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올여름엔 이 숲에 꼭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한기마저 느낄지도 모르겠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진초록빛 세상이어서다. 이런 숲이야말로 홀로 걸어야 제격이다. 그것도 이른 아침이나 해질 녘이 좋을 듯싶다. 유유자적 자신을 돌아보기에 그만일 것이다.
바람 섬 제주서 바람의 이기(利器) 비행기를 만나다
아시아대륙에서 가장 큰 항공우주박물관이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인데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에서 멀지 않은 오설록의 서광다원 옆에 있다. 격납고 형태의 건물 안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움에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특별한 공간이다.
박물관은 항공역사관(1층)과 천문우주관(2층)으로 구성됐는데 천장 높이 40m의 에어홀 공중에 내걸린 다양한 실물 비행기가 시선을 압도한다. 바닥에 전시한 전투기를 포함해 모두 23대나 된다. 그중엔 라이트형제의 플라이어호 모형과 초음속 비행기도 있다. 게서도 관심을 끈 것은 실물 전투기의 내부구조 전시다. 동체외벽을 제거하고 거기 장착된 기관포 등 내부를 보여준다. 이런 통 큰 전시는 지구상 허다한 항공박물관을 다녀봤어도 볼 수 없을 만큼 희귀하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있는 것과 똑같은 비행원리 체험관, 아이들을 위한 비행조종석, 공군갤러리도 볼거리다.
천문우주관에는 첨성대를 비롯해 허블우주망원경, 화성지표면 탐사로봇 큐리오시티 모형도 전시 중이다. 실제 체험공간인 테마관에서는 5D서클비전의 우주여행 체험시설 폴라리스 등 5종의 시뮬레이터가 있다. 이 시설 역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운영한다.
감귤창고에서 다양한 감귤주스 맛보기
‘감귤창고 느영나영’은 항공우주박물관, 서광다원이 있는 안덕면의 서광동리 주민(149가구 490명)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마을카페(올 1월 개업)다.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지역경제 활성화사업(일자리 창출)으로 추진됐는데 ‘느영나영’은 제주말로 ‘너랑나랑’.
이곳은 실제 감귤창고를 개조한 것. 멋진 카페로의 변신이 놀라울 만큼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여기선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감귤-뎅유자 한라봉 청귤 영귤-로 주스와 빙수를 낸다. 가래떡구이와 함께. 옆에는 이제 막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4실)도 있다. 한가로이 지내길 원하는 이에겐 강력히 추천한다. 마을은 해발 180m의 중산간. 지방도 1136호선이 지난다.
▼ Travel Info ▼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 일대. 7월 말 전망대 탐방안내소 등 시설 완비.
◇제주항공우주박물관: 8월 말까지 입장료(어른·테마시설 이용료 포함) 1만 원(60% 할인). 서귀포시 안덕면 녹차분재로 218. 옆에 항공우주호텔도 있다. 첫째 셋째 월요일 쉼. www.jdc-jam.com 064-800-2114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국가차원에서 ‘제주국제자유도시’의 개발을 촉진하기위해 설치한 전담기구. 관광·교육·의료·첨단사업 추진과 공공개발 사업자 및 투자 유치가 주 업무다. 학생 9000명 등 2만 명 거주가 목표인 ‘제주영어교육도시(현재 영국 NLCS제주 KIS제주 등 2개교)’, 홍콩 람정 및 싱가포르 겐팅의 합작법인(3억 달러 투자 유치)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제주신화공원’, 면세점 사업(제주공항 등)을 벌이고 있다. www.jdcenter.com 서귀포시(제주특별자치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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