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중동’이라는 단어를 어느 때보다 많이 보고 듣는 요즘이다.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책 ‘100년의 기록’은 그래서 일단 눈길이 간다.
그런데 무게감이 상당하다. 버나드 루이스(99)는 중동 연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자다. ‘100년의 기록’이란 제목은 올해 아흔 아홉 살인 저자의 한 생애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버나드 루이스가 100년 동안의 삶과 업적을 정리하고 그간의 중동 역사를 훑은 저서다. 그는 히브리어에 푹 빠졌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중동에 대한 오랜 관심으로 중동 역사학자로의 길에 들어섰던 것, 제2차 세계대전 중 중동에서 복무했던 경험 등을 털어놓는다. 터키 대통령 투르구트 외잘과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 요르단 국왕 후세인 등 중동의 여러 인물과의 만남에 대한 회고도 들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 같지만 한 권 전체가 100년 중동사의 기록이다. 버나드 루이스만의 중동사관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서구의 시선이 아닌 중동의 시각으로 중동사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이슬람 세력이 미국과 대립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중동이 서양 국가를 보는 관점에서 답을 찾는다. 2001년 9·11테러로 인해 미국에 대한 중동의 반감이 전 세계에 알려졌지만 ‘왜 이슬람이 미국과 대립하는가’에 대해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미국이 중동의 어떤 부분도 점령하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중동의 독립을 도왔던 터라, 미국이 중동의 적대 대상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버나드 루이스는 대다수 무슬림에게 정체성과 충성심의 기초는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종교라는 데 주목한다. 중동에서 보기에 기독교 세계로 간주되는 서양 국가들은 하나의 묶음이고, 자신들을 괴롭혀온 기독교 세계의 대표 국가가 미국이다. 이것이 무슬림들의 반미 감정의 기원이 된다.
“역사학자들은 도덕적이고 직업적인 책임감을 바탕으로 과거의 진실을 정확히 찾아내고, 파악한 그대로를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 나는 이런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했다.” 저자가 밝혔듯 이 기록은 버나드 루이스의 그 노력의 땀방울로 엮인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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