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반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면… 夏夏夏 패션산업 신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7일 03시 00분


직장인 쿨비즈룩 열풍 어디까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쌍방울 본사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시원한 차림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 쌍방울은 2010년부터 에너지 절감 및 업무 효율 증대를 위해 쿨비즈룩 캠페인을 시행해 오고 있다. 쌍방울 제공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쌍방울 본사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시원한 차림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 쌍방울은 2010년부터 에너지 절감 및 업무 효율 증대를 위해 쿨비즈룩 캠페인을 시행해 오고 있다. 쌍방울 제공
한여름에도 넥타이에 정장을 고수했던 쌍방울 마케팅팀의 김주열 팀장(38)은 회사가 2010년 6월부터 ‘쿨비즈룩 캠페인’을 시작하며 복장의 자유를 얻었다. 여름철이 되면 아침마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쿨비즈(Coolbiz)는 시원하다, 멋지다란 뜻의 쿨(Cool)과 비즈니스(Business)가 결합된 단어로 노타이에 셔츠 같은 간편한 옷차림의 근무 복장을 말한다. 김 씨는 “캠페인 첫해에는 임직원들끼리 반바지 차림으로 마주한다는 게 무척 생소했다”며 “하지만 5년 넘게 꾸준히 입어 오니 반바지에 어울리는 신발까지 신경 쓸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쌍방울이 처음 캠페인을 시작했을 당시 내건 목표는 에너지 절감 및 업무효율 증대였다. 하지만 캠페인을 6년째 해오며 쌍방울 내부에서는 쿨비즈룩으로 인해 기업 문화가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김 씨는 “복장이 자유로우니 기업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고, 격식보다 실용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직원들의 자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짧고 과감해진 반바지 패션

최근 몇 년 새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쿨비즈룩을 도입하며 노타이와 노재킷, 반팔 등이 주를 이뤘던 쿨비즈 패션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쿨비즈 ‘허용선’이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올해 처음으로 주말 및 휴일 근무자에 한해 반바지 차림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시범적으로 반바지를 허용했지만 다른 계열사로 확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2011년부터 평일에도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고 있다.

코오롱FnC의 남성의류 브랜드 ‘커스텀멜로우’가 올여름 선보인 쿨비즈룩. 허벅지에 약간 붙는 슬림핏의 반바지와 줄무늬 재킷을 매치해 활동성과 멋스러움을 강조했다. 코오롱FnC 제공
코오롱FnC의 남성의류 브랜드 ‘커스텀멜로우’가 올여름 선보인 쿨비즈룩. 허벅지에 약간 붙는 슬림핏의 반바지와 줄무늬 재킷을 매치해 활동성과 멋스러움을 강조했다. 코오롱FnC 제공
올여름 가장 주목해야 할 남자들의 패션은 단연 반바지다. 몇 년 전부터 남성들의 바지 길이가 복사뼈 위로 짧아지더니 올해는 무릎 길이의 5분뿐만 아니라 그보다 짧은 3분, 4분 반바지가 인기를 얻고 있다. 패션 전문 쇼핑몰인 ‘아이스타일24’가 5월 한 달간 남성 반바지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무릎 위로 올라간 짧은 반바지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9% 늘었다. 남성들의 ‘하의실종’ 패션이 트렌드로 자리 잡자 패션업체들은 남성용 반바지 물량을 늘리고 있다. LF에 따르면 패션브랜드 헤지스는 올여름 반바지 물량을 지난해보다 2배가량 늘렸다.

색상도 화사하고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빈폴’은 올해부터 반바지 끝자락이 접힌 ‘턴업 스타일’의 제품을 선보였다. 배가 나온 남성 직장인들을 고려해 허리 부분에 늘어나는 밴드를 부착한 것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솔리드 스타일과 체크무늬, 줄무늬가 여전히 대중적이지만 핑크, 민트 등 파스텔 색상에 플라워, 물방울무늬 등 다양한 패턴도 인기를 끌고 있다.

금강제화가 올여름 선보인 통기성이 뛰어난 메시(그물) 소재 구두와 가죽 샌들.
금강제화가 올여름 선보인 통기성이 뛰어난 메시(그물) 소재 구두와 가죽 샌들.
반바지를 선호하는 남성이 늘며 반바지와 함께 매치할 수 있는 관련 상품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금강제화에 따르면 4, 5월 남성샌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가량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여성샌들 판매 신장률은 5%에 그쳤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쿨비즈룩이 자리 잡으면서 쾌적함을 원하는 남성들이 출퇴근길용 신발로 샌들을 구입하는 경향이 늘었다”며 “예전에는 남성용 샌들이 슬리퍼나 스포츠샌들 정도였다면 요즘에는 가죽 소재의 세련된 샌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스타일24에 따르면 제모제를 찾는 남성도 증가했다. 지난해 제모제 판매량 가운데 남성이 차지하는 구매 비중이 1.3%였다면 올해 남성 구매 비중은 13%로 늘었다.

딜라이트 리넨부터 아이스 재킷까지

남성복 업체들은 무더위에도 쾌적함을 유지하며 실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쿨비즈 소재 개발에 한창이다.

제일모직은 천연소재인 리넨과 기능성 소재 폴리를 혼방해 특수 제작한 ‘딜라이트 리넨’을 올해 처음 선보였다. 리넨 소재는 천연 섬유 특유의 고급스러운 느낌과 청량감으로 여름 의류에 많이 쓰여 왔지만 물에 취약하고 구김이 많아 실용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제일모직은 18개월 동안 연구한 끝에 세탁 후 치수 변화나 형태 뒤틀림이 없고 물빨래가 가능하도록 제품을 개발했다. 빈폴이 올여름 내놓은 딜라이트 소재의 피케셔츠는 출시 한 달 만에 1만2000장이 팔렸다. 1997년 빈폴의 더플코트가 한 달 만에 5000장이 팔리며 히트상품이 됐던 것과 비교하면 꽤 많이 팔린 셈이다.

여름 재킷의 경우 가벼운 냉감 소재를 사용한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LF의 신사복 브랜드 ‘마에스트로’가 올해 선보인 ‘네이비 플라이트 재킷’은 안감과 불필요한 부자재를 모두 없애고 필수 요소만 넣은 초경량 재킷이다. 패션 기업 세정의 남성정장 브랜드 ‘브루노바피’는 냉감 소재인 모헤어 혼방 원단을 사용한 ‘아이싱 슈트’를 선보였다. 세정 관계자는 “피부와 맞닿는 재킷 안쪽의 부자재에 최적의 온도 상태를 유지하는 냉감 소재를 사용해 여름철 체감온도를 체온보다 10도 정도 낮게 유지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코오롱FnC 남성복 브랜드 ‘캠브리지멤버스’도 경량제품인 ‘제로 재킷’을 내놨다. ‘무게감 0’에 도전한다는 의미의 ‘제로 재킷’은 구김을 최소화해 재킷을 벗어 들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다.

LF에서 신사복을 총괄하는 이지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여름 남성복의 관건은 시원함을 유지하면서 스타일리시한 착장을 연출하느냐”는 것이라며 “남성복 업체들이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느낌을 주는 특수 냉감 소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원하면서 자유로운 스타일의 쿨비즈룩이 보편화하자 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아웃도어 업체도 이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자신들의 강점인 기능성 외에도 디자인을 가미한 쿨비즈 제품들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는 것. 지난해까지 아웃도어 업체들은 초경량 방풍 방수 등의 기능을 극대화한 캠핑 제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아웃도어 브랜드 ‘컬럼비아’가 올여름 출시한 ‘피케셔츠 컬렉션’은 기존 아웃도어 의류에 주로 사용했던 옴니위크 소재로 만들었으며 땀이 많이 나는 겨드랑이 부분에 냄새를 없애주는 테이프를 넣었다.  
▼ 쿨비즈룩, 어떻게 발전해왔나 ▼

긴팔 와이셔츠 → 하늘색 반팔 → 티셔츠 → 9분 바지…


쿨비즈룩은 조금씩 진화해왔다. 쿨비즈 시행 초기에는 반팔셔츠에 노타이 차림이 주를 이뤘으며 이후 캐주얼 스타일의 바지와 셔츠, 
실용성을 강조한 재킷이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반바지가 쿨비즈룩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제일모직 제공
쿨비즈룩은 조금씩 진화해왔다. 쿨비즈 시행 초기에는 반팔셔츠에 노타이 차림이 주를 이뤘으며 이후 캐주얼 스타일의 바지와 셔츠, 실용성을 강조한 재킷이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반바지가 쿨비즈룩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제일모직 제공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DJ DOC ‘DOC와 춤을’ 중에서)

가수 DJ DOC가 1997년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직장인이 회사에 청바지를 입고 가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한여름에도 정장 바지와 재킷, 긴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풀세트로 갖춰야 일터에 대한 예의이자 격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조직문화에 효율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직장인의 옷차림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실내 온도를 높이고, 업무에 편리성을 더하기 위해 재킷과 넥타이 등 불필요한 복장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쿨비즈 1세대가 유행한 시기라 부를 수 있는 2005∼2010년은 반팔 셔츠에 노타이 차림이 주를 이뤘다.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삼성그룹 사장단회의에 계열사 사장들이 이 같은 복장으로 참석하면서부터 다른 기업들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어두운색 정장 바지에 옅은 하늘색 반팔 셔츠를 받쳐 입어 여름철 중년 남성의 ‘교복’이라 불리는 조합이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캐주얼 스타일로 변하며 좀 더 과감해졌다. 면 소재 바지와 티셔츠, 캐주얼 남방 등을 코디하기 시작한 것. 여기에 샌들이나 스니커즈를 신는 멋쟁이들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쿨비즈 2세대 시대가 열렸다.

청바지를 입고 회사에 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때부터다. 체크무늬 남방이나 날렵한 몸매를 강조하는 티셔츠도 오피스룩으로 각광 받았다. 패션 감각보다 마음이 앞선 일부 중년 남성 가운데 양말 위에 샌들을 신는 ‘패션 테러리스트’들이 간혹 있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실용적이면서 편안한 차림을 하는 직장 남성이 늘어났다.

실용성을 강조한 재킷이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비즈니스 미팅 등 격식을 갖춰야 할 때가 많은 직장인들을 위해 여름철에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통기성 좋은 쿨비즈 재킷들이 남성복 브랜드에서 상당수 출시됐다. 초경량 소재를 사용해 입었을 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300g 안팎의 기능성 의류들이 앞다퉈 선보였다.

최근에는 쿨비즈 3세대로 불리는 ‘반바지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직장에서 다리를 노출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여전히 많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출근 차림으로 반바지에 손을 대는 이가 점차 늘고 있다. 무릎이 보일 정도의 짧은 길이가 아니더라도 복숭아뼈가 드러나 보이도록 9분 바지를 택하는 이도 많다.

칼라가 달린 반팔 피케 티셔츠를 선호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지난봄부터 고급스러운 리넨 소재를 다른 섬유와 혼방해 물빨래가 쉽도록 내놓은 피케 티셔츠가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구김이 잘 가지 않아 실용적일 뿐 아니라 캐주얼하면서도 단정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 찾는 이가 많다. 남성복 브랜드 로가디스의 소현수 디자인실장은 “쿨비즈룩이 점차 진화하면서 최근에는 적당히 격식을 갖추면서도 실용성을 강조한 캐주얼 상품들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염희진 salthj@donga.com·최고야 기자
#쿨비즈룩#회사#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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