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25>모든 이들의 개별적 애도를 위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0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전쟁이나 학살은 엄청난 수의 죽음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규모가 아무리 크다 해도 이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익명적이지 않다. 각자가 유일무이한 존재인 만큼 그 부재와 상실은 일반화될 수 없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는 뉴욕의 파크 애버뉴 아모리에서 ‘주인 없는 땅(No Man‘s Land)’(2010년·그림)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3000개의 과자깡통으로 벽을 만들고, 40만 명의 헌 옷을 모아 늘어놓은 대형 설치작업이다. 무려 30t의 헌 옷 더미가 이룬 거대한 ‘산’을 중심으로 주변을 높은 기둥으로 바둑판처럼 구획해 놓고는 가지각색의 옷들을 그 안에 배치했다.

‘산’ 꼭대기 위에 위치한 집게발의 크레인은 한 줌 옷가지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 무작위로 잡혔다 떨어지는 옷가지는 임의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는 인간의 가련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크레인이 움직이며 내는 기계음과 더불어 각 구획의 기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수천 명의 심장박동 소리가 전시공간으로 울려 퍼진다. 박동 소리는 그 사람들의 부재를 더욱 상기시킨다.

놀이공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크레인은 신의 손처럼 누군가를 들어올린다. 왜 누구는 살고 다른 누구는 죽는가를 묻는 인간의 절박한 질문은 크레인의 무심한 동작과 심장박동으로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작가는 엄청난 다수를 다루는 자신의 작품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유일하고 고유한 것”이라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의 중요성, 즉 개별자의 가치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를 둔 볼탕스키의 작업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포함해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애도와 기억을 주제로 한다. 작가의 말대로 유대인 600만 명의 죽음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각자의 죽음은 600만분의 1이 아니며, 그들 각각이 모두 전적인 상실이기 때문이다.

그가 전시한 옷은 누군가가 입었던 옷이다. 옷과 사진은 그 존재의 자취이고 떠나간 한 사람의 흔적이다. 바닥의 구획은 난민캠프를 연상시키기도, 대도시의 일상공간을 나타내기도 한다. 관람자는 자신의 잃어버린 지인을 찾듯 바닥의 옷들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 옷 한 벌마다에 담겨 있는 개인적 상실의 고통을 공유한다.

누구나 겪는 사랑하는 이의 상실은 언제나 개별적으로 오듯, 다수 속 각각은 전적으로 귀하다. 볼탕스키 작품이 철학적이라 불리는 이유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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