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빈약한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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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놀던 친한 친구들이 서너 명 있다. 20년이 넘는 우정인 만큼 친구들이 모이면 별별 싱거운 소리를 해대며 키득거려서 나에게까지 웃음소리가 전달된다.

“엄마, 아까 그 친구 꿈이 뭔지 알아요?”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돌아간 뒤에 아들이 한 친구를 지목했다. 그 친구의 꿈은 ‘재벌 2세’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영 노력을 하지 않으셔서 꿈을 이루긴 다 틀린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아직도 그러고 노느냐며 웃었지만 그 친구가 자영업을 시작하여 고전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속으로는 안쓰러웠다. 오죽하면 재벌 2세가 꿈이라는 농담을 했을까.

아들 친구 중에 한 명은 대학 졸업 후에 다시 교육대학에 다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다른 한 친구는 대기업에 사표 내고 변리사 공부를 하더니 1차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당연히 축하를 해줄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미진하다. 자리가 오래 보장되는 각종 임용고시가 수백 대 일이라는 뉴스를 접할 때도 맥이 풀린다. 재벌이 아니라 ‘재벌 2세’가 되는 것도 ‘꿈’이라고 친다면 경쟁률이 치열한 각종 고시도 분명 도전일진대 왜 한숨이 나오는 걸까. 너무 빈약한 꿈, 너무 빤한 도전이 갑갑해서인가.

최근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속이 다 시원했다. 요즘 금융투자업계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존 리 대표는 직원을 뽑을 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스펙 좋은 사람은 걸러내고 고생하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자기 소신을 갖게 된 사람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자동차와 운전기사를 거부하는 이유도 신선하다. “너무 재미없잖아요. 사장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모델의 까만색 자동차 타고 다니는 거요.” 상상해 보니 웃음이 나온다. 마치 우리 학창 시절의 교복처럼 까만색 승용차에 앉아 있는 사장님들의 일률적인 모습이.

물론 파격이 만능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젊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파격적인 생각도 해볼 일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좁은 문으로만 들어가려고 그 고생인가? 남과 다른 선택을 하면 안 되는가? 풍성한 꿈, 도전다운 도전을 위해 지금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면 어떨까. 다른 세상이 보이지 않을까? 위험한 공사일수록 많이 남는다고 했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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