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문화재인 창덕궁 낙선재 권역 내 일부 전각에서 숙박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궁(宮)스테이’를 추진한다는 보도 이후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부는 창덕궁뿐 아니라 고궁과 경주 서악서원 등 지방에 산재한 서원, 향교, 옛 지방 관아에서의 숙박프로그램을 하나로 묶는 통합 브랜드 ‘케이 헤리티지 인(K-Heritage Inn·가칭)’을 이르면 내년에 출범시킬 계획이어서 문화재 활용을 둘러싼 논란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보존이냐, 활용이냐
‘궁스테이’ 사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의 승인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본보 보도 직후인 지난달 30일 일부 문화재위원들과 함께 창덕궁과 경복궁의 현장 답사를 마쳤다. 아직 사적분과위원회 심사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다. 사적분과위원회는 문화재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승인 심사에서 재적 과반 참석에 출석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궁스테이에 대해서는 문화재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깃든 궁궐에 담긴 정신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 김광현 서울대 교수(건축학)는 “모든 문화재에는 각각의 역사적 기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며 “다른 곳이면 몰라도 한 나라의 왕궁을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7년 전 숭례문 화재 참사의 트라우마도 궁스테이 추진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서양과 다른 목조 문화재의 특성상 화재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홍성걸 서울대 교수(건축학)는 “우리나라 목조 문화재는 지붕이 특히 화재에 취약하다”며 “활용도 좋지만 보존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을 비롯한 상당수 전문가들은 ‘활용을 통한 보존’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집에 살지 않으면 곧 폐가가 되듯 최선의 문화재 보존은 활용이라는 것.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은 “일부에서 화재 위험성을 거론하는데 빈집에서 오히려 방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고택(古宅)도 일단 사람이 사는 게 보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세계적인 흐름도 ‘박제된 문화재’로 보존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이 모델로 삼고 있는 건 스페인 파라도르(parador) 호텔. 그라나다와 세고비아, 톨레도 등 유서 깊은 도시에 자리 잡은 고성과 수도원, 요새 등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체인 숙박시설이다. 스페인 전국에만 90여 개에 달하는 파라도르 호텔이 있다. 외관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편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 합리적인 문화재 활용 방안
이처럼 언뜻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재 보존과 활용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원형 훼손을 막기 위해 내부 개조를 최소화하고 관람객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물 외관과 주요 구조를 보존하되 내부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관람객으로선 불편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본래의 고궁 생활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재인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화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궁궐 내 취사를 아예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숙박뿐만 아니라 고궁 전각 내부를 전시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최근 복원된 덕수궁 석조전 내부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꼭 숙박시설이 아니더라도 강의장이나 세미나실, 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조종엽·민병선 기자
▼한복 차림 외국인 20여 명, 시습당서 茶道수업에 한창…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개방 5년 만에 지역 명물 된 경주 서악서원
3일 경북 경주시 서악서원(西岳書院). 무열왕릉을 지나 호젓한 산길을 따라 한 30분쯤 걸었을까. 진흥왕릉과 서악동 삼층석탑(보물 제65호) 아래로 산뜻한 단청을 두른 서원이 나타났다. 신라시대 설총과 김유신, 최치원의 위패를 나란히 모신 사당을 중심으로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좌우로 배치한 전형적인 조선시대 서원이다.
이곳은 경북도 지정문화재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1563년 설립돼 45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보통 서원들이 그렇듯 으레 엄숙하고 조용한 나머지 썰렁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중앙의 시습당(時習堂)은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한복을 갖춰 입은 외국인 20여 명이 수업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유생들이 배웠던 경전 대신 찻잔을 손에 쥐고 다도(茶道)를 배웠다. 동재와 서재는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안에 들어가 보니 에어컨부터 전기장판까지 냉난방을 갖춘 숙박시설로 꾸며져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와 다름없었다. 평소 서원은 꽁꽁 잠겨 있었고 매년 두 차례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잠깐 문을 열었다.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400년 넘은 목조건물에는 거미줄이 쳐졌고 내부는 곳곳이 뒤틀려 틈까지 벌어졌다.
관리에 애를 먹던 문중은 문화재 위탁 운영기관에 서원을 맡기고 외부에 공개했다. 조선시대 서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낮에는 활쏘기와 다도, 국악공연, 붓글씨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폐가는 곧 지역 명물이 됐다. 인근 무열왕릉에서 진흥왕릉, 서악동 삼층석탑, 도봉서당을 거쳐 서악서원을 잇는 40분짜리 산책 코스까지 생겼다. 지난해 서악서원을 방문한 인원은 1만5000명에 이른다.
진병길 신라문화원장은 “고택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환기가 제대로 안 되고 습기 때문에 집이 망가지게 마련”이라며 “최선의 문화재 보존은 활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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