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자. 사내가 콤팩트 파운데이션을 열고 주먹보다 작은 거울에 바위만 한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모습을. 머슴처럼 두툼한 손으로 파우더를 볼에 톡톡 찍어 바르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손발이 오그라든다. 거기에 입술에 뭐라도 바른다고 치면 “아, 진짜 뭐(?) 떼버려”란 소리 나온다. 그런데 먼 얘기가 아니다. 이미 일부는 숨어서 하고 있다. 진짜다. 웃을 일이 아니다. 본인이 여성이라면 남자친구나 오빠의, 남자라면 친구 놈의 이야기일 수 있다!
사실 쉽게 와 닿지 않는 이야기다.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기사로 등장했지만 이상하게 내 주변에서는 못 본 것 같다. 남자들에게 화장품에 관해 물어도(물론 남자들끼리는 화장품에 대해 물어보는 일조차 드물지만) “집에 있는 거 대충 바른다”는 답변이 가장 많을 것이다. 딸기잼처럼 새콤한 빨강 티셔츠에 새파란 바지까지 입는 본보의 이철호 기자(28)조차 “아무거나 바르면 되지 뭘 사내가 화장품까지 신경 쓰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화장품 챙기는 남자가 한국에 제일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5월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의 2013년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한국 남성이 화장품 구입에 쓰는 돈이 1인당 세계 1위”라고 전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2위 덴마크의 3배가 넘는 금액을 화장품에 썼다.
이처럼 한국에서 화장품을 쓰는 남자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이유는 바로 ‘사내’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창피해 감춘다는 말이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비슷한 해석을 내놓았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교 문화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여서 남자가 꾸미는 것을 터부로 여겨온 문화적 전통이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 사회가 가장 보수적이다.” 그렇다면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한국 남자들은 왜 숨어서까지 좋은 화장품을 찾아 쓰게 됐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렇게 안 하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능력만 갖추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사회 통념상 과거에는 ‘학벌’, ‘재력’ 같은 능력이 으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모도 경쟁력이다. 요리사도 운동선수도 잘생겨야 뜬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요즘은 성형하는 남자도 크게 늘었을 만큼 외모가 큰 경쟁력인 시대”라며 “남성들도 관리를 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 남자의 화장품 ▼
다른 남자들은 어떤 화장품을 많이 쓸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평이 좋은 화장품 세 가지를 소개한다.
랩시리즈의 ‘워터 로션’은 이름처럼 물과 흡사하다. 내가 물을 바르고 있는 것인지 스킨을 바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런데 효과는 기대 이상. 피부 결이 매끈해지고 산뜻한 느낌이 든다. 주변에 트러블이 생겼다는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정말 추천하고 싶다. 키엘의 수분크림은 전 세계에서 400만 개 이상 팔린 유명 제품이다. 한겨울 추위에도 허옇게 피부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피부 깊숙이 수분을 공급해 촉촉하다. 여름철 남성을 위해 나온 ‘오일-프리 쿨링 수분 젤크림’도 있다. 라네즈의 ‘선 비비 SPF50’을 추천하는 이유는 티가 안 나면서도 밝은 피부톤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SPF50 PA++의 높은 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겸비했다. 로션처럼 손쉽게 바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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