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 쌤소나이트코리아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웬만한 중년 남성은 알 수 없는 여성들의 메이크업 방법을 꿰고 있는 그였기에 가능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피부색과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 색상의 어울림 등을 한눈에 파악하는 그였다.
최 대표는 20여 년간 패션·뷰티 업계에 몸담아 왔다. 1993년 신라면세점 패션 바이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이브생로랑 지사장(2003∼2005년)과 바비브라운의 브랜드 매니저(2005∼2013년)를 지냈다. 화장품 회사에 몸담을 당시 몇 달간의 교육과정을 밟아가며 공부한 덕에 스모키 메이크업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을 정도다.
‘원조 그루밍족’이라 할 수 있는 그에게 스타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가 평소 아끼는 애장품들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그 철학이 반영된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애장품 목록 가운데 샤넬 시계가 눈에 띈다.
신라면세점에서 명품 브랜드 바이어를 할 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명품으로 휘감아야 ‘명품녀’ ‘명품남’이라고 생각했다. 명품 브랜드를 이제 막 즐기기 시작한 ‘명품 1세대’의 특징이다. 한때는 동전지갑까지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을 들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저렴하면서도 트렌드에 민감한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 옷을 입고 무심한 듯 명품 브랜드로 한 가지 포인트를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든 패션 카테고리에서 양극화가 심해진 거다. 키톤 양복을 입지 않으면, 자라 양복을 입는다. 파텍필립 시계를 차는 게 아니면 스와치를 택한다. 명품만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뭐든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멋이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온 거다.
―아끼는 패션 브랜드가 있다면….
SPA 브랜드는 방앗간 들르는 참새처럼 잘 다닌다. 상점에 들어간다고 다 사는 것은 아니지만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아 애용한다. 럭셔리 브랜드를 사랑하지만 애용하진 않는다. 면세점 바이어로 명품 브랜드 제품을 발주하며 늘 고민했던 게 바로 가격이다. 내가 소비자라면 ‘과연 이 가격에 지갑을 열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도 합리적인 소비라는 판단이 들 때만 돈을 쓴다. 지금 입은 바지도 유니클로 제품이다.
면세점 바이어로 일할 때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오게 된 영국 향수 브랜드 조말론도 ‘아끼는’ 브랜드다. 요즘 특히 찾는 이가 많은 것 같아 뿌듯하다.
―애장품에 가방 종류가 많다.
검은색 서류 가방은 쌤소나이트 블랙 레이블에서 8년 전 출시된 한정판이다. 일반 서류가방보다 디자인이 예쁘고 고급스러워 애착이 간다. 사업적 담판을 짓는 중요한 미팅 때 마치 ‘비밀 병기’처럼 들고 나간다. 이 가방을 들고 나갈 때마다 행운의 여신이 따라준 적이 많고, 마음가짐을 견고하게 해주는 묘한 가방이다.
큰 캐리어를 애장품으로 꼽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른 제품들과 디자인이나 색상이 비슷하지 않고 차별화되기 때문. 명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취향과 맞는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흔하지 않은 아이템을 발견하기 위해 쇼핑을 외국에서 할 때가 많다. 일본 신주쿠 이세탄백화점 2층에 있는 남성용 편집숍은 애용하는 쇼핑장소다.
―해외출장 등 해외 갈 일이 많다고….
바이어 시절에는 명품 브랜드 본사가 많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많이 갔다. 쉬는 날엔 같이 간 일행들과 조금씩 회비를 걷어 작은 버스를 렌트해 작은 도시를 둘러봤다.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에 있는 시에나라는 중세도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밀라노나 피렌체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로 치면 동네 분식점 같은 느낌의 피자 파스타 집들을 찾아다녔던 게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커피보다 차를 즐겨 마신다고….
티 세트를 애장품으로 꼽은 건 커피보다 시간의 미학을 지닌 차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 같은 종류의 차라도 원산지별로 맛이 달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내용물을 톡 털어 넣어 마시는 봉지커피도 물론 괜찮지만, 차는 그릇을 준비하는 정성과 차가 우러나길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초반에는 짜증을 낼 수도 있지만, 기다리면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여유로움이 얼굴에 드러난다.
마흔 살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마흔 전까지는 태어난 얼굴대로 살지만, 그 이후부터는 살아온 과정이 얼굴에 그대로 반영된다. 살아온 과정이 얼굴에 도장처럼 쾅 찍히게 되는 것.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얼굴을 하고 환하게 웃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긍정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게 있다면….
주말에 끊임없이 활동적으로 움직인다. 요즘에는 난지도 캠핑장 근처에 ‘쌤소나이트 숲’이란 걸 가꾸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봉사활동을 가서 나무를 심는 것. 애장품으로 꼽은 중절모도 멋 부리는 용도가 아니라 야외 활동 할 때 햇빛을 막아주는 용도다. 시골 농부 모자 쓰는 것보다 기왕이면 예쁜 모자를 쓰는 게 기분이 좋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꾸고 싶어 하는 남성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스타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40대 이상의 남성은 패션에 상당히 보수적이다. 하지만 수업료를 지불하는 마음으로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나에게 맞는 것들을 찾아가길 바란다. 노란 셔츠나 핑크 셔츠가 내게 어울리는지 입어보기 전엔 알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고 수업료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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