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명가(名家)로 꼽히는 픽사가 1995년 첫 장편 ‘토이스토리’를 내놓은 지 20년이다. 장난감을 시작으로 벌레(‘벅스라이프’), 물고기(‘니모를 찾아서’), 아이들의 비명을 먹고 사는 괴물(‘몬스터주식회사’)처럼 예상을 벗어난 소재를 설득력 있게 그려온 픽사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바로 인간의 뇌 속을 그린 ‘인사이드 아웃’(9일 개봉·전체 관람가).
주인공은 열한 살 난 소녀 라일리와 그 머릿속에 살고 있는 다섯 가지 감정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다.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는 다섯 감정은 저마다 성격이 제각각이다. 기쁨은 늘 활기차고, 슬픔은 축 쳐져 있고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식이다. 다섯 감정은 라일리와 함께 태어나 성장해간다.
평화롭던 다섯 감정의 세계는 라일리가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하며 일대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어린 소녀에게 대도시의 낯선 환경, 친구들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감당하기 버겁다. 감정들 역시 라일리와 함께 요동친다. 어느 날 갑작스런 사고로 기쁨과 슬픔은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뇌 속 어딘가로 떨어지고, 세 감정만 남은 본부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만다.
영화가 아직도 상당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뇌를 그리는 방법은 기발하면서도 명쾌하다. 모든 기억은 ‘기억 구슬’에 저장되고, 그중 오래된 기억은 거대한 책꽂이처럼 생긴 ‘장기 기억 보관소’에 저장된다. 꿈을 연출하는 ‘꿈 제작소’, 생각을 실어 나르는 ‘생각의 기차’, 오래된 기억이 폐기처분되는 ‘기억 쓰레기장’ 등 드넓은 뇌 속 장소들은 그대로 기쁨과 슬픔이 겪는 블록버스터 뺨치는 모험의 무대가 된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백미는 기억을 추상화된 개념으로 변환하는 ‘추상화 공간’이다. 영화는 우연히 이 공간에 들어선 슬픔과 기쁨이 서서히 추상화하는 과정을 3D입체였던 캐릭터가 2D 평면으로 변하고, 다시 선과 점이 되어가는 모습으로 시각화했다.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색채가 풍부한 뇌 속 세계로 모험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한 부모, 그리고 ‘난 대체 언제 어떻게 어른이 된 거지’라고 한번이라도 한탄해본 어른이라면 누구나 영화의 매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카2’(2011년)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년)의 부진으로 “이제 한물갔다”는 평을 받던 픽사가 확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픽사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뒤집기’(inside-ou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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