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태평인 성격이지만 연습때만큼은 자신에게 혹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0일 03시 00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인 첫 바이올린 부문 1위, 임지영

결선까지 가면 실력은 다 비슷… 자신감-집중력-컨디션이 승부갈라
8월까지 빡빡한 연주 일정… 짬나면 바이올린 없는 여행 하고싶어

임지영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왼쪽 얼굴이 더 자신 있으니 그쪽으로 찍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콩쿠르 때문에 다이어트할 시간이 없었다”며 걱정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스무 살 여대생이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임지영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왼쪽 얼굴이 더 자신 있으니 그쪽으로 찍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콩쿠르 때문에 다이어트할 시간이 없었다”며 걱정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스무 살 여대생이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친구들이 저보고 ‘해탈’했다고 해요. 어쩌면 그렇게 지독하게 연습하면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느냐고요.”

스무 살에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1위를 차지한 임지영. 바이올린 부문에선 한국인의 첫 우승이다.

지난달 29일 귀국한 그를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평범한 여대생처럼 많이 재잘거리고 많이 웃었다. 세계 정상급에 오른 연주 실력을 가지려면 예민한 성격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깨져버렸다.

“부모님도 부러워하실 만큼 성격이 천하태평이에요. 한때 연습하다가 ‘내가 바이올린 좋아해서 하는 건데 이건 바이올린에 매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근데 그게 마음먹기 나름이더라고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좋아해요.”

툭툭 털어내는 그의 말에서 낙천적인 성격과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번 콩쿠르 우승도 그런 성격이 일조한 게 아닌가 싶었다.

“콩쿠르 결선까지 가면 다 실력이 비슷하잖아요. 그땐 기교 연습이 중요한 게 아니죠. 잘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집중력, 그리고 컨디션 관리가 더 필요한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한 달 동안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기간에 연습을 설렁설렁 했다는 뜻은 아니다.

“콩쿠르 연습 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제게 혹독하게 대했어요. 이성적으로 ‘이건 안돼, 저건 돼’라고 판단하면 그대로 행하는 거죠. 특히 연습할 때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빈틈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연습이 끝나면 다시 천하태평으로 돌아와요.”

결선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그는 눈물을 보였다. 눈물이 거의 없는 편인데 ‘해냈구나’라는 후련함이 눈물로 이어졌다. “남들은 ‘잘했는데 왜 울어’라고 하는데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때 마지막 연기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린 심정을 100% 이해하겠더라고요.”

지금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여행. 물론 바이올린 없는 여행이다. 콩쿠르 이후 갈라 콘서트 등 일정이 이어지는 와중에 딱 1박 2일이 비었다. 그는 아침 일찍 벨기에에서 파리로 넘어갔다. 파리의 친구들과 만나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등을 둘러보며 맛있는 식당에 갔다.

“콩쿠르 하느라 진이 빠졌는데 재충전할 수 있었어요. 몸은 좀 피곤했지만요. 여행을 하면 낯선 곳의 새로움이 늘 나의 내면을 깨우는 것 같아서 너무 신나요.”

그러나 당분간 바이올린 없는 여행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달과 다음 달 내내 빡빡한 연주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 스트링 콰르텟’의 콘서트는 그에겐 첫 공식 실내악 연주다. 이어 16, 23, 25일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원주시향, 김다솔, 손열음과의 협연, 다음 달엔 7일 평창스페셜뮤직페스티벌 개막연주회와 13일 독주회가 줄줄이 이어진다. 요즘 공식 연습시간은 4∼5시간이지만 개인 연습까지 치면 8∼9시간은 보통이다.

첫 앨범을 낸다면 그는 비에니아프스키의 작품을 고를 거라고 했다. “비에니아프스키는 바이올린의 쇼팽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색채를 갖고 있거든요. 첫 앨범인 만큼 가급적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7세 때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뒤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로 들어간 그는 앞으로 석사 과정은 스승인 김남윤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같이 할 예정이다.

“더이상 콩쿠르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한 스테이지가 끝난 셈이어서 마음은 좀 여유로워졌어요. 하지만 다음 스테이지는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겠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잠시 했는데 지금은 ‘생각할 필요 없이 앞에 닥친 연주 일정을 잘 소화하자’는 마음뿐이에요. 아직은 많은 걸 해볼 나이잖아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바이올린#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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