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사회과부도를 펼치면 외계어처럼 박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던 지리 기호들이다. 사회과부도는 기후, 지형, 식생, 인구와 산업 분포 같은 세상 모든 것이 담긴 만물상이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 ‘지리학은 오지랖도 참 넓다.’ 하지만 요즘은 손끝만 대면 어디든 찾아주는 내비게이션의 보편화로 지도 볼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지리학의 ‘부활’을 꿈꾼다. 다 죽은 학문 같은 지리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가를 역설한다. 지리학은 다양성의 학문이며 고립주의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로 상호 연결이 더욱 긴밀해진 요즘, 지리학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인 지구온난화 문제를 이해하려면 지리학을 알아야 한다. 지구는 25억 년 전∼5억7000만 년 전인 원생대 후기에 갑자기 꽁꽁 얼어버렸다. 기온 저하는 지각이 안정돼 화산활동이 줄고 태양의 복사량이 감소한 게 이유로 추정된다. 이 가설을 ‘스노볼(Snowball) 지구설’이라고 한다.
이후 지구는 여러 차례 빙하기를 겪고 있다. 빙하기는 아주 추운 시기와 비교적 따뜻한 짧은 시기가 몇 차례씩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는 그중 따뜻한 시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 시기가 1만2000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러니 지난 몇십 년의 온도 변화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물론 지금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 행위를 경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테러리즘도 지리학의 눈으로 분석된다. 중동 테러리즘의 번성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인구 변화에서 찾아진다. 1932년 사우디 왕국이 수립된 이후 막대한 석유 판매로 부가 축적되며 20세기 말 왕가의 규모가 5000여 명으로 증가한다. 이들은 대부분 와하브주의(이슬람 복고주의)에 경도됐다. 왕족들은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을 후원했다. 그들이 후원한 조직이 이슬라미야(인도네시아), 아부 사야프(필리핀), 이슬람 지하드(이집트),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끈 알카에다 등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기후의 관계도 흥미롭다. 사막 기후로 자연환경이 혹독한 사우디, 파키스탄, 수단에서는 엄격한 이슬람이 번성했다. 반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 온화한 환경에서는 온건한 이슬람이 지배적이다.
책의 후반부는 지리학적 마인드로 본 주요 국가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조언으로 채워진다.
중국은 지역 간 경제발전 불균형이 문제다. 장쑤(江蘇) 성에서 마카오에 이르는 남부 태평양 연안 지역은 세계 최대 도시산업 복합체로 번성하고 있다. 반면 랴오닝(遼寧) 성을 비롯한 동북지역은 미국의 ‘러스트 벨트’(중서부, 동북부의 쇠락해가는 공업지대)를 연상시킬 만큼 활력이 떨어졌다. 이에 따른 지역 간 빈부격차가 심각하다.
유럽은 종이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세수는 불충분하고, 연금을 지불할 여력이 없으며, 복지비용은 통제를 벗어났다. 그리스처럼 취약한 유럽연합(EU) 회원국의 대외 부채는 증가하고 있다. 많은 유럽인이 EU 프로젝트를 양의 탈을 쓴 세계화이자 각 나라 생활 방식에 대한 달갑잖은 개입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러시아는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 러시아 인구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당시 1억4800만 명에서 2012년 1억4100만 명으로 줄었다. 낙태 관행과 성병이 널리 퍼져 출생률은 줄고, 지나친 음주와 흡연 때문에 남성 사망률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마치 서재에 걸린 세계지도를 보며 방대한 각국의 지리정보와 문명사를 훑는 듯한 지적 만족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사안마다 스며든 미국 중심의 시각에는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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