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 더 뮤지컬’로 본 공연 관람가 기준 논란
“표현의 자유” 1988년 공윤위 폐지
1999년엔 사전각본심의제 없애고 제작사 자체적으로 관람연령 결정
영등위서 심의하는 ‘영화’와 대조
제작사 “19세 관람가땐 표 안 팔려”… 전문가 “선정-폭력성 기준 마련을”
《 미국 남부의 엄격한 가톨릭계 고등학교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의 1막 마지막 장면.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제이슨과 아이비가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제이슨은 아이비를 침대에 눕힌 뒤 치마 안에 손을 넣어 속옷을 벗기고 서로의 교복 셔츠를 풀어헤친 뒤 다양한 성행위 자세를 취한다. 이들의 성관계 장면 분량은 대략 4∼5분. 》 ‘베어 더 뮤지컬’에는 고등학생의 노골적 성관계 장면을 비롯해 클럽에 모여 마약을 하는 장면, 여고생이 교복에 가터벨트(스타킹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키는 벨트 형태의 속옷)를 차고 돌아다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관람 등급은 ‘만 15세 이상’이다. 중학교 3학년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람 등급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한 걸까.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주제와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 등 7가지 요소에 따라 등급을 정하지만 연극, 뮤지컬 등 공연은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관람 등급을 결정한다. 관람 등급을 정하는 기준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대형 뮤지컬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공연 관람 등급은 매번 제작사 대표와 직원들이 회의를 통해 정한다”며 “선정성과 폭력성 등에 대한 뚜렷한 연령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베어 더 뮤지컬’ 제작사 쇼플레이 임동균 대표는 “일부 성관계 장면이 나오지만 성장기 청소년의 고민, 방황,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어서 만 15세 이상 관람가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공연 제작사들은 ‘청소년 관람불가’를 붙이기 꺼려 한다. 만 19세 이상 관람가로 정할 경우 인터넷 예매 과정에서 아이핀이나 휴대전화로 성인 인증을 거쳐야 하는 제약이 있어 예매율이 떨어진다는 것. 임 대표는 “3월 초부터 공연 중인 뮤지컬 ‘쿠거’는 개막 당시 만 15세로 정했다가 여성의 자위행위를 다룬 노래 등이 문제가 돼 만 19세로 올렸더니 티켓 판매율이 25%가량 떨어졌다”고 말했다.
무대 위 ‘야한’ 연기에 대한 관람 등급 논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미국 토니상 수상작으로 브로드웨이에서도 노출신이 화제였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대표적인 예. 극 중 고등학생의 성관계 장면에서 여배우의 가슴과 남자 배우의 엉덩이가 노출되는데 2009년 초연 당시 국내 제작사는 ‘고등학생 관람가’로 정했다.
공연 등 무대물 심의는 과거 공연윤리위원회가 다루다 1988년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며 폐지됐고 공연물의 사전각본심의제도도 1999년부터 없어졌다. 전문가들은 공연 관람 등급 결정을 자율에 맡기는 현 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려면 공연계 자체적으로 ‘연령별 등급 결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뮤지컬은 영화나 방송과 달리 접근성이 떨어지고 고가의 티켓 가격 등 보편적이지 않은 성격이 있는 만큼 규제보다는 시장에서 관람 연령을 제시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며 “제작사들은 선정성이나 폭력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사전에 관객에게 제공하고 자율적 등급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조용신 뮤지컬평론가·연출가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공연의 경우 공식적인 관람 등급제는 없다”며 “하지만 뉴욕 브로드웨이의 경우 극장주협회에서 운영하는 공연 사이트나 제작사 등이 공연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선정성, 폭력성 등을 고려해 적절한 권장 연령을 밝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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