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하퍼 리“너라면 정부가 운영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 손에 운영되는 것을 원하겠어? 니그로들은 하나의 종족으로서는 아직도 유아기에 있다.”
하퍼 리(89)의 신작 ‘파수꾼’(열린책들)에서 애티커스 핀치가 외친 말이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흑인을 변호하는 정의로운 변호사였던 애티커스가 14일 발간된 ‘파수꾼’에서는 이처럼 인종차별주의자로 그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서울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간담회 등을 통해 ‘파수꾼’에 얽힌 사연을 정리했다.
○ 출간 막전막후
“1년 치 생활비를 줄 테니 하고 싶은 걸 해.”
1956년 12월 리에게 친구 마이클 브라운은 이렇게 제안한다. 리는 이듬해 초부터 ‘파수꾼’을 썼고 5월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출판사 편집자 테이 호호프는 “작품은 좋지만 원고를 달리 써야 한다”고 리를 설득한다.
당시 미국은 1954년 ‘브라운대 교육위원회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 흑인 차별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후 백인들이 반발해 흑인들을 폭행하는 등 흑백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대의 논쟁을 직접적으로 담은 ‘파수꾼’이 그대로 나오면 판매나 작가의 안전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리는 호호프의 말을 받아들여 ‘앵무새 죽이기’를 썼다.
리는 당초 두 책뿐 아니라 한 권을 더한 3부작을 계획했다. 하지만 ‘앵무새 죽이기’가 성공을 거두자 ‘더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파수꾼’을 금고에 넣고 은둔 생활을 해 오다 뒤늦게 원고가 빛을 보게 됐다.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에 이은 세 번째 소설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리의 변호인 토냐 카터는 최근 세 번째 소설이 있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그는 리가 지명한 전문가들이 먼로빌은행 금고에서 미확인 원고들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카터는 그 미확인 원고가 ‘파수꾼’이나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인지, 두 책을 연결하는 세 번째 책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파수꾼’을 번역한 공진호 씨는 “앞으로 리의 작품들을 비교해 가며 비평하는 등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며 “그가 범죄 관련 소설을 쓰려고 자료 조사를 한 흔적도 있다”고 말했다.
○ ‘파수꾼’ 흥행은?
‘파수꾼’은 미국에서 초판 발행만 200만 부, 아마존 예약 판매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세계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도 활력을 불어넣을지는 미지수다. 한 대형 서점 관계자는 “현재까지 예약 주문은 200부가량으로 ‘대박’ 추세는 아니다”며 “미국의 인종 문제라 국내 독자의 감정 이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충격적 반전’이란 보도와 공격적 마케팅으로 20만, 30만 부는 나갈 것”(A출판사 대표)이라는 전망도 있다. ‘파수꾼’은 선인세가 6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40만 부 이상은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출판계는 진단한다. 열린책들 측은 “‘앵무새 죽이기’가 7월 들어 1만 부 판매된 만큼 ‘파수꾼’도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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