細·密·可·貴… 고미술품 140여 점 실물 디테일의 아우라 넘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삼성미술관 리움 기획전

13세기 고려시대 작품인 청자 진사연화문 표주박 모양 주전자 2점. 앞쪽 것은 국보 133호, 뒤쪽 것은 독일 함부르크 미술공예박물관 소장품이다. 실제로 쓰인 붉은 안료는 동(銅)이지만 색이 비슷한 수은과 황 성분의 진사(辰砂)로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 유사한 작품이 미국 워싱턴 프리어 갤러리에 한 점 더 있다. 리움 제공
13세기 고려시대 작품인 청자 진사연화문 표주박 모양 주전자 2점. 앞쪽 것은 국보 133호, 뒤쪽 것은 독일 함부르크 미술공예박물관 소장품이다. 실제로 쓰인 붉은 안료는 동(銅)이지만 색이 비슷한 수은과 황 성분의 진사(辰砂)로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 유사한 작품이 미국 워싱턴 프리어 갤러리에 한 점 더 있다. 리움 제공
구슬 서 말, 꿰어야 보배다. 9월 13일까지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 미술의 품격’전은 이 옛말의 타당함을 방증한다. ‘세밀함이 뛰어나 귀하다 할 만하다’는 뜻의 전시명은 고려 인종 때 찾아온 송나라 사신 서긍이 나전 세공품을 보고 내놓은 감탄에서 가져왔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라면 누구나 조상들의 빼어난 손재주에 대해 익히 들어 왔다. 하지만 막상 돌아보면 실물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그 빼어남을 속속들이 확인할 기회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해외 유명 박물관 한구석에 모아 놓은 한국 전통 예술품 전시실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우리 땅에서 만들어진 청자, 서적, 활자, 그릇이 거기까지 흘러간 사연에 대한 상념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 요모조모 냉정히 살피기가 쉽지 않다.

국보 287호인 백제 금동 대향로. 6세기경 제작돼 1993년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 진흙에 묻힌채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걸작이다. 26일까지만 전시되고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돌아간다. 리움 제공
국보 287호인 백제 금동 대향로. 6세기경 제작돼 1993년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 진흙에 묻힌채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걸작이다. 26일까지만 전시되고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돌아간다. 리움 제공
이번 기획전을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전시품은 ‘청자 진사연화문 표주박 모양 주전자’(독일 함부르크 미술공예박물관 소장)와 조선시대 수묵담채 산수화 2점 등 10여 점이다. 그보다 돋보이는 건 고미술 작품 140여 점의 디테일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한 전시 구성이다. 나전 장식 경전함, 탱화, 금동 향로, 청자연적…. 국내외 미술관에서 한번쯤 만나 본 작품이다. 작정하고 끌어모아 세부를 찬찬히 살피니 실물 디테일의 아우라가 하나하나 새롭다.

40여 점은 해외 21개 소장처에서 빌려 왔다. 50여 점은 자체 소장품, 나머지는 국내 곳곳에서 빌린 것이다. 편견일까. 문득 시선 붙들려 멈춰 살핀 작품 출처는 대개 바다 건너다. 조지윤 리움 책임연구원은 “8월부터 전시할 예정인 통일신라 금동약사여래입상 등 5점을 빌린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특히나 깐깐한 대여 조건을 걸었다. 소장품이 들어가는 유리 진열대 안에 일일이 온도계와 습도계를 넣어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빌려온 고려의 나전 국화 덩굴 문양 원형 합(14∼15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빌려온 고려의 나전 국화 덩굴 문양 원형 합(14∼15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3개 전시실로 나눠 각각 ‘문양’ ‘형태’ ‘묘사’에 주목하도록 했다. 서긍의 찬탄을 낳은 나전 공예품은 첫 전시실에 모아 놨다. 메인 메뉴라 할 국화와 모란 덩굴 문양 경전함(13, 14세기) 6점은 모두 보스턴미술관, 영국박물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교토 기타무라미술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해외 소장품이다.

표주박 모양 주전자와 통일신라 금동 수정금판장식 촛대 옆에는 작품 이미지를 확대해 이리저리 뒤집어 돌려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마련했다. 취향에 따라 반응이 다르겠지만 생생한 초고화질 TV 영상이 나란히 놓인 실물의 아우라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세 번째 전시실 끄트머리에는 길이 8.56m에 이르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느릿느릿 걸으며 꼼꼼히 감상할 수 있도록 널찍한 별실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두 번째 전시실의 백미인 ‘백제 금동 대향로’는 27일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돌아간다. 빈자리는 고구려 불상 2점으로 채울 예정. 조 연구원은 “대여 기간에 따라 전시품을 20% 정도 교체한다”며 “다음 달 재방문하는 관람객은 지금과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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