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굉장한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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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모부가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둥거리던 막내이모가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내가 먼저 죽게 생겼다. 나 좀 성당에 데려가 다오”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이모와 함께 성당 사무실로 찾아가 교리를 신청하러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무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더라는 것.

왠지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꾹 참고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을 열고 나온 사무장이 퇴근하려는 듯 사무실 문을 잠그는 게 아닌가. 다급하게 다시 교리 신청을 하러 왔다고 말하자 사무장은 “교리 등록은 벌써 다 끝났어요”라고 말하고는 휭하니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기가 막힌 이모는 설움에 겨워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다음 날 새벽에 이모부는 또 응급실로 실려 갔다면서 그녀는 너무 속상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외면당한 걸 생각하니 내 마음도 아팠다. 그 사무장은 왜 그랬을까? 그날 불쾌한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더라도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더욱 절망에 빠뜨린다는 걸 알았더라면 차마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대단한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줄 안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거나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평소에 접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한 달 전, 모르는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택배 아저씨가 203동 우리 집으로 배달할 상자를 103동 자기 집 문 앞에 놓고 갔다는 것이다. 당장은 찾으러 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자 “편한 시간에 오세요”라는 친절한 답이 왔다. 두어 시간 후 문자를 보내고 103동 앞으로 가니 젊은 아빠가 유모차를 끌고 나와 일부러 나를 기다렸다가 상자를 전해주었다.

이렇게 친절하고 상냥한 이웃, 언제나 명랑한 얼굴로 등기우편물을 전해주는 집배원 아줌마, 건물을 들락거리며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 단골 음식점의 종업원들, 실은 이렇게 소소하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커다란 바위가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우리가 타인을 좌절시킬 수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는 굉장한 존재라는 것, 그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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