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김다은 작가 “우리말의 폭과 의미는 넓고도 깊어… 모국어로 집 짓는 작가로서 자부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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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한글 주제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전 참여 서영은-김다은 작가

국립한글박물관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전시회에서 함께한 서영은 김다은 씨(왼쪽부터). 두 사람은 “한글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국립한글박물관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전시회에서 함께한 서영은 김다은 씨(왼쪽부터). 두 사람은 “한글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일 찾아간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은 ‘단어와 문장의 숲’이었다. 작가들에게 감동을 준 소설 500여 권과 빈 원고지, 작가들이 작품을 집필할 때 썼던 필기도구 등이 전시돼 있었다. 자신만의 글쓰기를 고백하는 작가들의 동영상도 보였다. 21일부터 9월 6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는 소설 속 한글을 주제로 한 전시회다. 자기 물품을 내놓고 영상물 제작에 참여한 작가 서영은 씨(72)와 김다은 씨(53)를 이날 만나 ‘한글로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서영은=언어와 글자라는 게 공기나 물과 비슷해서 소중함을 깨닫기 쉽지 않다. 혼자 외국여행을 갔는데 우리말을 못 쓰니 유령처럼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인이세요?’ ‘네’ 그 짧은 대화를 하는데 유령의 시간이 날아가 버렸다. 우리말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우리다워지는지 실감했다.

▽김다은=소설 밖 한글은 서류, 정보, 지식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도구다. 소설 안 한글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축하는 언어다. 소설 밖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지만, 소설 안 한글은 작가가 만든다.

▽서=(전시된 원고지를 보고) 이런 원고지에 글자를 하나하나씩 썼었다. 수공업을 하는 사람 같았다.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종이를 잘라 붙여서 그 위에 새로 썼다. 한두 글자 틀리면 수정 테이프로 지우고. 컴퓨터로 작업한 지 5년쯤 됐는데 아직도 원고지 뭉치와 풀, 가위, 수정 테이프가 집에 많다(웃음). 예전엔 그렇게 고치면서 생각을 다듬어 갔다. 단어를 마음 깊은 곳에서 골라내는 시간도 창작에 포함된다.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책을 제작하는 시간은 단축됐겠지만… 아쉽기도 하다.

▽김=나는 컴퓨터 세대지만, 소설이 잘 쓰이지 않을 때는 원고지를 꺼낸다. 손은 빨리 쓰고 싶어 하는데 머리가 손을 못 쫓아가서다. 그럴 때는 원고지 작업을 하면서 머리와 손의 속도를 맞춘다.

▽서=한글 문장을 낭독하면 우리말이 내 몸의 핏줄과 세포 구석구석을 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모국어가 육체와 얼마나 깊이 교감하는지 깨닫는다. 무차별적 언어파괴, 외래어, 비속어가 횡행하는 걸 보면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김=소설가에게 한글은 ‘모음’이라고 생각한다. 모음의 ‘모’는 ‘어미 모(母)’다. 자음에 모음이 함께해야 비로소 글자가 만들어진다. 한글은 소설가에게 모음처럼 언어가 만들어지는 자궁 같다.

▽서=이달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소설 속 좋은 문장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문장배달’을 진행하고 있다. ‘육체로 사는 모든 산 것들이 무(無)로 환원하는 대역정’(김훈 ‘화장’), ‘실존의 도끼날 위에 엎어진 사람들이 있다’(최정희 ‘정적일순’) 등을 소개했다. 문학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새삼 느낀다. 내가 종(鐘)인 것처럼 문장들이 나를 친다.

▽김=상상력 사전을 만들어서 생각날 때 메모를 해둔다. 새 작품을 쓰게 되면 배경이 되는 곳을 탐방해 용어를 배운다. 가령 미용실이 배경인 소설이면 로드(머리카락 마는 기구), 중화제 같은 전문용어를 수집한다. 새롭고 감각적인 단어도 노트에 적어둔다. 최근 ‘햇귀’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해가 떠오를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밝은 빛’이란 뜻이다. 얼마 뒤 출간할 청소년 소설에 이 어휘를 썼다.

▽서=(전시실 벽에 적힌 단어 ‘파르르 떨리는’을 가리키며) 저 단순해 보이는 두 단어가 한 사람의 심장이 떨리는 모습부터 우주 전체의 울림까지도 아우를 수 있다. 우리말의 폭과 의미는 이렇게 넓고도 깊다. 모국어로 집을 짓는 작가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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